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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어딜 가도 온통 "하이닉스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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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뉴욕=신중돈 특파원, 이철호 기자] 외국 펀드 매니저와 애널리스트들은 다짜고짜 "앞으로 하이닉스반도체의 운명은 어떻게 되느냐" 고 따져 물었다. 은행 관계자들은 으레 "당신 회사는 하이닉스에 얼마나 물렸느냐" 는 첫 질문을 받았다.

그들은 그리고 나서 한참 뒤에야 "한국 경제는 언제쯤 회복될 것인가" "증시의 반등 시기는 언제쯤으로 보는가" 라는 쪽으로 질문의 방향을 틀었다.

증권거래소가 도쿄(3일).싱가포르(5일).런던(7일).뉴욕(10일)에서 연 제2차 해외합동 기업설명회(IR)의 최대 화두는 '하이닉스' 였다. 하이닉스가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관심사가 된 것이다.

기업설명회에는 삼성전자.SK텔레콤.한국통신.한국전력.포항제철 등 국내 간판 기업 10개사 관계자들이 참가하고 정작 하이닉스는 빠졌지만 질문의 초점은 항상 하이닉스에 맞춰졌다.

싱가포르에서 대표 강연을 한 김병주 서강대 교수는 "외국 펀드 매니저와 애널리스트들의 한국 경제에 대한 안목이 높았고, 생각보다 깊숙한 정보를 갖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고 말했다.

하이닉스 처리에 대한 반응은 지역과 소속 회사별로 조금씩 달랐다.

싱가포르의 한 펀드 매니저는 "샐러먼스미스바니(SSB)증권과 시티은행도 하이닉스에 크게 물렸다. 한국이 설마 하이닉스를 포기하겠느냐" 고 말했다.

SSB의 리 웨이트 상무는 "기업.금융의 구조조정이 지속되리란 전망 아래 한국 증시에 대해 우리는 낙관적인 전망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고 밝혔다.

그러나 불안감을 내비친 펀드 매니저들도 적지 않았다. 이들은 "하이닉스를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한국 경제의 바로미터" 라며 "국내적으로 대통령의 레임덕 현상이 시작되고 세계적인 불황으로 한국의 구조조정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고 지적했다.

미국계 한 펀드 매니저는 A기업과의 1대1 미팅에서 "외국 투자자가 한국 기업 시가총액의 32%를 차지하고 있다" 며 "하이닉스 문제 등 투명성을 깨는 조치가 되풀이되면 아예 중국으로 투자 방향을 틀 수 있다" 고 경고했다.

또 크레딧 스위스 퍼스트 보스턴 관계자는 뉴욕 IR에서 대표 강연을 한 이헌재 전 재경부장관을 따로 만나 "하이닉스 처리에 왜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느냐" 고 따져물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회사는 지난 6월 하이닉스의 해외주식예탁증서(DR) 발행 때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투자에 대해 외국 투자자들은 썩 자신있는 표정은 아니었다.

SSB의 켄스웡 매니저는 "주식을 팔아 현금 비중을 높여야 할지 싼값에 매수에 나서야 할지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 이라고 털어놓았다.

푸트남 인베스트먼트의 무랄리 스리칸타이아 수석 부사장도 "한국 경제의 50%를 차지하는 정보기술(IT)분야가 심각한 경기 침체를 겪고 있어 부담스럽다" 며 "일단 침체 국면을 겪은 뒤에야 회복이 가능할 것" 이라고 전망했다. 개별 기업과의 1대1 면담에서 외국 투자자들은 다양한 관심을 나타냈다.

중화경제권에 불고 있는 한류(韓流)열풍을 비즈니스 기회로 활용할 계획이 있는지 묻는 사람도 있었다.

또 차세대이동통신에서 한국이 세계적 경쟁력을 가질 경우 반도체에 버금가는 수익산업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는 조언도 있었다.

증권거래소는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국내 증시를 띄우기 위해 합동 IR를 마련했지만 외국인 투자자들은 주가 하락 탓인지 전체적으로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모 기업 관계자는 "그동안 외국의 주요 투자자들에게는 주기적으로 기업정보를 제공하고 있어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고 말했다. 그러나 IR에 참가한 한국통신 관계자는 "외국 투자자들이 하이닉스 반도체를 포함한 국내 경제문제를 우리보다 더 많이 걱정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 최대의 성과" 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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