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미국이 정말 무섭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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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근데 말이야, 넷스케이프는 어떻게 됐지?"

"정말, 그 회사 지금도 살아 있어?"

마이크로소프트(MS)가 둘로 쪼개지는 운명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외신을 보고 주변에서 이런 말들이 오갔다.

불과 4년 전만 해도 넷스케이프의 앞날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정보의 바다 인터넷을 항해하는 데 나침반 역할을 해주는 프로그램인 '내비게이터' 의 인기가 워낙 높았기 때문이다.

*** MS 반독점위반 소송 포기

그러나 지금 이 회사의 존재는 통 만져지지 않는다. 바로 MS의 경쟁 프로그램인 '익스플로러' 에 밀려난 것이다. 전문가들 중에는 내비게이터의 몰락을 품질의 열세가 아니라 MS의 엄청난 마케팅 능력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물건을 만드는 능력보다 마케팅이 중시되는 요즘 세상에서 당연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MS의 시장지배력이 불공정한 상행위에 힘 입은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MS는 선두주자인 넷스케이프의 내비게이터를 따라 잡기 위해 윈도를 팔면서 익스플로러를 끼워 팔았다. 컴퓨터를 구동하기 위한 기본 도구인 '윈도' 를 안쓰는 PC가 거의 없는 현실에서 이 전략은 그대로 먹혀 들었다.

전임 클린턴 행정부가 이 끼워팔기를 문제삼아 MS를 반독점법 위반행위로 걸었다. 이 소송에 대한 재판결과가 지난해 6월 나왔다. MS를 두개의 회사로 분할하라고.

그런데 올들어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지난 2월 취임한 부시 대통령은 법무부 반독점국장에 워싱턴의 유명 변호사 찰스 제임스(46)를 지명했다.

이 때 월 스트리트 저널 등 미국의 유수언론들은 제임스의 성향이 친(親)기업적이라며 앞으로 미국의 반독점 정책에 변화가 예상되며, MS분할에도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른다고 예측했다. 제임스는 취임 전 "MS의 분할로 소비자들에게 어떤 혜택이 돌아갈지 확실치 않다" 며 분할에 부정적이었다. 부시 대통령 자신도 지난해 말 선거 유세 때 비슷한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결국 지난 6월 말 미 항소법원은 MS의 분할을 명령한 1심 판결을 기각했다. 그리고 지난 주 미 법무부는 MS소송을 사실상 포기한다고 발표했다.

이번 일은 정부와 기업관계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법 위반 행위도 시각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결론에 이른다는 점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미국이란 나라도 별 게 아니라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복잡한 사안이지만 간단히 말하면 정권이 바뀜에 따라 기업을 보는 시각이 크게 달라진 것이다. 독과점 문제를 엄격히 다룰 것인가, 아니면 가능한 모든 기업활동을 시장에 맡겨두느냐의 차이인 셈이다. 부시 행정부가 후자쪽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보수성향의 미 공화당 정권은 특히 자국기업의 이익보호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진행형인 사건 하나를 보자. 지난 주 미 국무부는 그다지 커 보이지 않는 사안에 대해 중국에 공식 항의를 제기했다. 중국측이 미국의 투자은행 CSFB를 '차이나 유니콤(중국 2위의 이동통신회사)' 의 해외채권 발행 주간사 후보에서 제외시킨 것을 문제 삼은 것이다. 앞서 미국 언론들은 "중국측이 CSFB가 대만 재정부장관을 홍콩 회의에 초청한 데 대해 이런 '보복' 을 했다" 는 식으로 보도했다.

*** 親기업적인 부시 행정부

미국은 지금 한국경제에 가장 큰 난제로 떠오른 하이닉스반도체 처리방향에 대해서도 자국의 경쟁사인 마이크론테크놀로지의 주장을 우리 정부에 충실하고도 빠르게 전달하고 있다.

MS의 독과점문제만 하더라도 익스플로러의 출현으로 희생된 넷스케이프는 이미 과거지사라는 생각을 부시 행정부는 갖고 있는 것 같다. 내달이면 더 많은 최신 서비스를 장착하고 세계를 주름잡을 윈도XP가 나오는데, 이 시점에서 MS의 발목을 잡으면 안된다는 시각이다. 정말 무서운 미국이다.

심상복 국제경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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