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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로 쓰는 평론가' 김윤식교수 11일 고별강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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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이 소설의 참 뜻은 무엇일까에만 골몰해왔다. 길을 걸을 때도 교수회의 석상에서도. 그러면 직장에서 의당 쫓겨나야 하는데 '그런 사람도 사회에 필요하지 않겠느냐' 는듯 그대로 놔둔 대학에 감사한다. "

김윤식(金允植.65)서울대 교수가 오늘(11일) 오후 2시 서울대 박물관 강당에서 고별강연을 갖고 33년간 교수로 몸 담았던 서울대에서 정년퇴임한다. 비교적 신참 교수로 누구나 맡게 돼있는 학과장 몇 년을 빼고는 다른 보직은 일체 없었다. 오로지 소설 읽고 연구하고 글쓰고 가르치는데에만 몰두한 것이다.

김씨의 대학 연구실이나 집 서재에는 책들이 사방으로 눕혀 쌓여 있다. 앉은 자리에서 필요하면 언제든지 책들을 참고하기 위한 효용성에서다.

1962년 평론으로 등단한 이후 소설이 발표되는대로 읽고 평론을 써내 온 김교수를 문단에서는 '발로 쓰는 평론가' 로 부른다. 60년대 이후 나온 소설집만 5천여권을 갖고 있고 그가 집필한 평론집과 문학연구서만도 1백여권에 이른다.

"나오자 마자, 따끈따끈할 때 작품을 읽는다. 그래야 좋은 작품에서 머리카락이 쭈뼛 설 정도의 긴장감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즉시 쓴다. 내게 비평 행위는 작품을 통해 내가 새로 깨달은 세계.현실.인간에 대한 깨달음의 확인 작업이다. "

김씨는 "소설, 문학작품은 모든 것을 다 깨우쳐주고 나아갈 길을 가르쳐주는 '스승이요 길잡이' " 라 한다. 문학 속에는 세가지 메시지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이야기 하려는 것,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무의식적으로 드러내 독자가 간파한 것, 한 시대의 현실과 꿈인 집단무의식의 세겹이 한 작품 안에 들어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위엄을 지키고, 보다 좋은 현실세계를 만들려한 이념.역사의 시대는 갔다. 그런 믿음을 가장 잘 드러낸 문학도 끝장났다. 구소련 붕괴 이후 우리 소설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민주화 투쟁등 지난 연대만 회고하는 '후일담문학' 으로 흘렀지 않은가.

그러나 문학 속에 앞으로 나아갈, 21세기를 향한 해답이 들어 있다. 그러니 열심히 읽을 수 밖에. "

새로운 시대를 향한 징후를 김씨는 90년대 중반 윤대녕씨의 소설에서 찾았다. 인간은 이제 신념과 이상을 지닌 존재가 아니라 윤씨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은어며 메뚜기며 되새떼며 벌레와 같은 동물이라는 것이다.

이제 항일이니 분단이니 민주화가 문학의 주제가 되는 역사적 상상력이 아니라 '인간도 한갓 생물에 불과하다' 는 생물적 상상력이 문학을, 인간을 이끌 것 아닌가하는 징후를 읽었다는 것이다.

40년간 문학 작품 최일선에 서 왔음에도 그는 이른바 문단적인 인물이 아니다. 김씨의 평론에 빚진 많은 작가, 특히 젊은 작가들이 몰려들지만 김씨는 그들을 자기 사람으로 만들어 소위 '문단 권력' 을 누릴 수 있는 '사단' . '파벌' 을 만들지 않았다.

"60년대 '창작과비평' '문학과지성' 이 창간되며 그 동인들이 활발히 활동할 때 거기에 끼지 못한 작가들이 제3의 작가군을 형성하며 활동했다. 그러나 그들도 어느 한 곳으로 속속 편입돼갔고 오늘까지 그 두 곳은 문학의 두 축으로 작용하고 있다.

'창비' 와 '문지' 의 두 구도의 이념이 한국 문학과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힘이고 이것은 우리 사회의 이념과 심성에 깊이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무슨 '권력' 이라는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현실이요 꿈이요 생존방식인 것이다. "

'문단권력' 의 실체로서 요즘 '창비' 와 '문지' 가 종종 공격을 받고 있다. 비판은 문학의 문학성을 지켜내기 위해서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김씨는 문학권력을 비판하는 행위 또한 권력을 만들려는 게릴라전 아닌가고 묻는다.

문학권력에 대한 비판이 성공하려면 비판 행위자 역시 자신을 분석.반성하며 권력 구도가 우리 문학의 생리와 생존방식과 어떤 연관을 맺고 있는가를 살피며, 치고 빠지는 것이 아니라 책임 있는 비판을 가해야한다는 것이다. 이는 문단뿐 아니라 지금 중구난방 혼란스럽고 사방이 적인 우리 사회에 대한 충고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는 한 몸으로 20, 21세기라는 두세기를 살아가야한다. 앞으로의 문학은 두 개의 중심, 두 개의 상상력을 갖춰야한다.

김지하 시인은 감옥 창턱으로 날아온 민들레 씨앗이 싹을 틔우는 것을 보고 '생명' 을 깨달아 6년의 투옥 생활을 버텼다 한다. 생명의 씨앗, 품위를 지키며 자유롭게 감옥 안과 밖, 시공을 넘나드는 씨앗 같은 작품이어야 21세기에도 문학은 문학 구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

앞으로도 문학에서 새세기의 징후를 읽으며 그것을 전하기 위해 김씨는 계속 읽고 쓸 것이다. 그리고 학문이나 비평이 아니라 진짜로 자신을 표현해보고 싶다한다. 평론을 시나 소설의 부차적 산물이 아니라 그와 똑 같은 예술의 수준으로 끌어올려 보겠다는 것이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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