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에곤 바르 전 서독 연방장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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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독일 통일의 기초가 된 '동방정책' 의 설계자였던 에곤 바르(79) 전 서독 연방장관은 평화포럼 참석차 서울을 방문해 기자회견을 갖고 인내심있는 남북 대화.협력을 강조했다.

바르 전 장관은 빌리 브란트 총리 시절 서독의 동방정책 입안과 추진과정에 깊숙이 관여한 인물로 막후에서 미.소의 독일통일 지지를 이끌어내는 등 통일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독일판 '햇볕정책' 을 추진한 그에게 남북관계의 현안을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 한국에서는 대북정책을 놓고 여야간, 진보.보수세력간의 갈등이 심한데.

"서독도 동방정책을 시작하면서 겪은 일이다. 통일을 향한 노력은 하나의 긴 과정인 만큼 후퇴는 있을 수 있다. 지난해 김대중 대통령이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행한 연설을 기억하고 있다. 金대통령이 햇볕정책을 추진해 노벨평화상을 받은 만큼 이 정책이 중단된다면 국제사회로부터 이해와 지지를 얻기 어려울 것이다. "

- 서독은 이념적 갈등을 어떻게 극복했나.

"사실 동방정책은 인기가 없었다. '서독이 동독을 지원하면 동독정권이 오히려 안정될 것' 이라는 게 비난의 핵심이었다. 우리는 이에 대해 동독 동포가 고통받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반박했다. 동독 주민이 우리의 핏줄이듯이, 북한 주민도 남한의 동포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인권문제 대화로 풀어야

- 통일과정에서 가장 유념해야 할 점은.

"우리는 동서독 사람들의 정신적.문화적 차이를 파악하지 못했다. 수백만 주민들이 동서독을 상호 방문했지만, 평상시가 아닌 휴일 모습만 보았을 뿐 서로의 진면목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현재 한국은 통일의 가시적 일정이 잡혀 있지 않아 미래가 불투명하고, 독일보다 분단기간이 길어 남북한의 이질화가 심화됐을 것으로 본다. 이제 남북한 주민은 서로 힘을 모아 한민족을 재창조해야 한다. 이를 위해 남북이 서로 협력할 분야를 찾아 상호 공조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비록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는 어차피 거쳐야 할 과정이다. "

- 대북 전력지원에 대해 미국이 반대한다는 얘기가 있는데.

"미국은 군사적으로 최강이 되려고 하며, 아무도 이를 막지 못할 것이다. 각국은 미국의 이런 정책과 충돌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자국의 정책을 펼쳐 나갈지 지혜를 모아야 한다. "

***北 체제붕괴 가능성 없어

- 金대통령이 북한의 인권문제를 거론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는데.

"이것은 가장 복잡한 문제다. 사람을 도우려면 큰소리로 떠들어서는 곤란하다. 서로가 신뢰를 잃지 않으면서 인권문제를 풀어야 한다. 우리는 동독과 협상할 때 공식석상이 아닌 대화 테이블에서 인권문제를 거론했다. 金대통령은 인권을 존중하는 분인 만큼 이 문제를 잊지 않고 있을 것이다. "

- 햇볕정책으로 북한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나.

"적을 향해 가야지 적과 등을 돌려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비록 작은 걸음이지만 하나씩 과정을 밟다보면 전보다는 상태가 나아질 것이다. 길게 보고 인내하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

- 북한이 경제난으로 붕괴할지 모른다는 분석이 있는데.

"전혀 의미가 없다. 내가 알기론 공산주의 국가가 경제적 이유 하나만으로 붕괴된 적은 없다. 50년대 동독의 경제가 매우 어려워 곧 무너질 것이라고 많은 전문가들이 예측했지만,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북한정권은 여전히 완벽한 통제력을 갖고 있고, 북한주민들은 일제 식민지 이후 민주주의적인 정치문화를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래로부터 큰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은 없다. "

최원기 기자

◇ 약력

▶1922년 트레프루르트 출생

▶45년 이후 베를리너 차이퉁, 알게마이네 차이퉁, 타게스슈피겔 등에서 기자생활

▶66~69년 외무장관 특별보좌관 겸 외무부 기획국장

▶69~74년 독일총리실 차관 및 연방장관

▶74~76년 경제협력부장관

▶76~81년 사민당 사무총장

▶84~94년 함부르크대 평화연구 및 안보정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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