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大路의 정치 小路의 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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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치란 현실이라 했다. DJP 공조 체제가 깨진 지금 집권 여당은 소수 정당으로 남았다. 여기에 임기 1년반을 남긴 대통령으로서, 여당 총재로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취해야 할 선택지(選擇肢)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 또한 정치 현실이다.

이런 답답한 정치 현실에서 대통령이, 여당 총재가 취해야 할 향후 정국 방향과 입장은 어떠해야 할 것인가.

우리는 먼저 정도(正道)의 정치, 대로(大路)의 정치를 취해야 한다고 본다. 골목길, 협로(狹路)를 택하기보다 광명정대한 대로를 선택해야만 이 난국을 풀어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여소야대의 정국 상황이라고 해서 그 자체가 정치의 걸림돌이 되지는 않는다. 어찌보면 관용과 상생.타협의 의회정치를 복원해 낼 수 있는 좋은 기회일 수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보혁(保革)갈등과 국론 분열이라는 혼란을 겪고 있다. 이런 혼란과 갈등을 막기 위해서도 서로를 감싸고 끌어안는 관용의 정치를 펴야 한다.

야당과의 정책 공조를 통해 경제 현안을 풀어야 하며, 대북정책 또한 야당과의 정보 공조와 합의를 통해 2단계 햇볕정책을 설정하고 추진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본다.

협로의 정치란 무엇인가. 이념과 정책을 달리했던 자민련과의 결별을 민주당의 독자성과 개혁성을 높일 수 있는 기회라 보고 개혁.통일세력 중심으로 강성 일변도의 길을 택하는 경우다.

이런 협로의 정치란 소수 야당이라면 가능한 일일지 모르지만 정치.경제.사회 전체가 갈등과 혼란에 빠져 있는 지금 정국에선 집권당이 취할 수 없는 길이다. 이 점에서 우리는 金대통령이나 여권이 관용과 화해.상생으로 대표되는 대로의 정치를 택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어질 당정 개편이 어떤 식으로 나타날지는 미지수다. 소수의 한계를 넘기 위해 단선적인 강성 인물 포진에 연연한다면 이 또한 관용의 정치를 그르칠 수 있다. 지난 3년7개월의 국정 경험은 무리와 강수 정치의 귀결을 웅변하고 있지 않은가.

이미 여권 내에서 제기된 바 있는 국정 쇄신이 이뤄질 수 있는 균형잡힌 인선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만 나름대로 인정받은 정책을 진전시키고 미진한 구조조정 작업 등을 마무리짓게 될 것이다. 이것이 비록 소수파 정권이지만 국정을 제대로 이끌어 나갈 최선의 방책이다.

이회창(李會昌)총재의 한나라당도 당장의 다수에 만족해 다수당의 책무를 몰각한다면 국민의 지지 획득은 고사하고 한나라당 스스로가 걱정하는 여권의 '오기 정치' 에 걸려들 수 있다. 지금이야말로 관용과 상생의 정치를 유도할 수있는 새로운 정치 행태를 선보일 절호의 기회다.

발목잡기의 야당, 사사건건 트집잡는 정치가 아닌 상생 정치의 모범을 야당이 앞장서 보여야만 난국의 정치상황을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여당보다 야당 쪽에 국민의 기대와 시선이 집중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정말 새로운 형태의 상생 정치의 모범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국정 파탄에 일정 책임이 있는 JP의 자민련도 캐스팅보트의 위치만 즐길 게 아니다. 자기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 정치판의 혼란을 더한다는 비난에서 벗어나야 한다.

국민은 지금 좁아터진 '골목길' 정치에서 벗어나 확 뚫린 '큰 길' 정치로 나아가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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