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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장흥 5일장 따라 식도락 기행 2

중앙일보

입력


장흥의 봄에는 키조개와 한우가 풍년
금강산도 식후경인지라 시골장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장터 안의 식당은 시장에 모인 제철 재료들의 가장 가까운 유통 경로다. 기자는 이곳에서 장흥 키조개를 제대로 먹어볼 요량이었다. 키조개를 먹는 장흥만의 방식이 있다. 3대 특산물과 함께 먹는 ‘키조개 삼합’이다. 3대 특산물은 키조개와 표고버섯, 한우다. 장흥 표고버섯은 지난해 이명박 대통령이 설 선물로 고를 만큼 예전부터 명성이 자자하다. 한우는 횡성이나 나주 등 대표 산지에 비해서는 덜 알려졌지만 맛은 뒤지지 않는다. 겨울에도 날씨가 따듯해서 청보리 같은 사료 작물 재배 환경이 좋은데, 좋은 먹을거리로 키우다 보니 육질도 그만큼 좋다. 한우 시장 상인들은 “유명세는 덜해도 여기서 고기 사면 절대로 후회 안 한다”며 자랑이다. 실제로 장흥 한우는 65% 정도가 1등급 판정을 받는데, 전국 평균치 53%보다 높다.

키조개 삼합을 맛있게 먹으려면 고기를 잘 골라야 한다. 신씨가 “부드러운 식감의 키조개는 얇게 썰어 육질이 연한 차돌박이와 제일 잘 어울린다”고 추천하기에 차돌박이 한 근, 한우 시장 상인이 “고기 맛 좋은 꽃등심은 따로 구워 먹어도 맛있다”고 귀띔하기에 등심 한 덩이도 따로 샀다. 장터에는 한우를 파는 상점이 많은데 모두 한곳에 모여 있고 부위별 가격이 똑같다. 1등급 한우 600g 기준으로 꽃등심 3만8000원, 차돌박이는 2만7000원이다. 고기를 사 가면 장터 안 식당에서 구워 먹을 수 있는데 전부 깔끔하게 리모델링해서 쾌적하다. 키조개와 표고버섯은 장터에서 직접 사는 게 좋지만, 식당에 ‘삼합 먹겠다’고 주문하면 재료값만 받고 준비해 준다. 육질 좋은 한우와 부드러운 키조개의 조화는 최근 먹은 음식 중 제일이었다. 연한 쇠고기에 쫄깃한 키조개를 섞어도, 조개 육수가 고기에 살짝 스며들 만큼 돌판에 같이 구워 먹어도 나름대로 별미였다. 배불리 먹기에도 좋고 술안주로도 제격이다.

해초가 제맛 내는 마지막 계절
해초에서 봄맛을 느끼고 싶으면 남도 대표 먹을거리 매생이국이 좋다. 부드럽고 연한 매생이와 싱싱한 굴로 국물을 내 남도 술꾼들이 1등 해장국으로 꼽는 요리다. 예전에는 겨울에 많이 먹지만 요즘에는 저장 기술이 좋아 저온에 보관해 두고 사시사철 먹는다. 다만 생물 그대로먹으려면 매생이도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장터 어느 식당에서나 매생이국은 기본 메뉴다. 청정 바다로 꼽히는 장흥에서 나는 매생이는 남도에서도 품질이 으뜸. 대덕읍 내저마을과 신리마을이 주산지인데, 마을 앞길이 아예 ‘매생이길’이라고 이름 붙었을 정도다. 4월이 넘어가면 채취가 끝나는데, 올해는 겨울이 워낙 추워 매생이가 많이 얼어서 손으로 일일이 바닷물을 끼얹어 살살 녹여가며 채취한 터라 물량이 달리니 봄이 가기 전에 빨리 먹어보자.

매생이국에는 반찬으로 김 장아찌를 곁들여도 좋다. 도시 사람들이야 김으로 밥만 싸 먹지만 장흥에는 좋은 김이 워낙 많아 장아찌로도 만든다. 보통 김을 양식할 때 잡조류가 들러붙는 걸 막기 위해 유기산을 쓰는데, 여기는 유기산을 넣지 않은 ‘무산김’을 재배한다. 과일로 치면 농약 없이 재배한 유기농이다. 유기산 없이 잡조류를 막으려면 수시로 김을 손질해야 되는데, 그만큼 정성을 기울이다 보니 품질이 좋고 싱싱하다는 게 상인들의 귀띔이다.
겨울부터 절정을 맞은 해초들은 봄까지가 딱 제철이다. 더워지면 아무래도 그 맛이 덜해지니 지금이 제맛을 구경할 마지막 기회. 제철 맞은 봄 재료와 마지막 맛 뽐내는 겨울 먹을거리가 교집합을 이루는 곳. 지금 장흥에 가면 절정의 봄맛과 마주할 수 있다.


장터에서 찾은 5가지 봄맛
약초 냉면
장터 안 식당 ‘끄니걱정’(061-862-5678)에서만 맛볼 수 있는 숨은 별미다. 쑥으로 면을 뽑고 가시오가피와 당귀를 갈아 넣은 육수에 겨우내 아껴둔 동치미 국물을 섞어 시원한 맛을 더한다, 여기에 봄나물을 고명으로 얹으니 계절 느낌이 확 산다.

새조개 샤브샤브
장터 정문 앞, 길 건너 신발가게 옆 포장마차에 가면 제주에서 올라온 아낙이 차린 포장마차가 있다. 이곳에서는 개운한 해물 육수에 부추와 팽이버섯, 새조개를 함께 데쳐 먹는 새조개 샤브샤브를 맛볼 수 있다. 2월부터 4월 사이에 제일 많이 잡히는 새조개는 지금이 딱 맛있다.

감태 무침
남도 바닷가에서 봄에만 먹을 수 있는 재료다. 파래 무침과 비슷하지만 좀 더 짭조름한 맛이 난다. 감태는 데쳐 먹으면 흐물흐물해지고 맛이 떨어지니 가급적 적게 손질해서 먹는 게 좋다. 장터 특산품 시장에 가면 한 통씩 구입할 수 있다.

주꾸미 찜
3월과 4월 사이에는 알이 찬 주꾸미가 제철이다. 머리를 살짝 쥐었을 때 속에 노릿노릿하게 알 들어찬 게 보이면 맛있는 놈이다. 시장에서 2kg에 1만원, 식당에 가서 요리해 달라고 주문하면 머리랑 몸통은 찌고 다리는 양념에 버무려 회무침을 만들어준다.
산채비빔밥_장터에서 아침에 가져온 봄나물이 주재료다. 특이한 것은 장터 식당들에서는 돌판 위에 얹어 철판볶음밥 스타일로 먹는다. 쌉쌀한 봄나물이 불판에 살짝 익으면서 맛이 순해진다.

취재_이한 기자 사진_이민희(studio lamp)
여성중앙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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