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옹기종기 동네 카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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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꽃이 핀 ‘카페나루’ 마당에는 밤이 이슥하도록 동네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다세대 주택과 단독주택이 모여 있는 서울 광장동 골목 안. 그렇고 그런 동네 한가운데에 ‘카페나루’가 있다. 담을 털어낸 마당에 차려진 이곳은 단풍나무와 화사한 살구나무 한 그루가 눈길을 끌 뿐 제대로 된 간판조차 없다. 그 조촐한 카페가 이른 아침부터 부산하다. 등산복 차림의 어르신이 마당에 내놓은 의자에 앉으시며 “오늘은 아이스아메리카노로 할까?” 하신다. 일명 ‘경찰 아저씨’로 불리는 올 84세의 퇴직 경찰이시란다. 카페 주인 경서완(29)씨는 또 다른 단골 어르신은 노환으로 요양 중이라며 걱정스러운 얼굴이다.

산에 오르는 사람들이 뜸해지나 싶으니 동네 아주머니들이 마당으로 하나둘 모여든다. 그야말로 집안일을 하다 슬리퍼 끌고 나온 폼이다. 아기를 둘러업고 온 아줌마는 배 불러 다니다 얼마 전 둘째를 낳고 산후조리를 마치자마자 나왔다. 그들의 한바탕 수다가 잦아들 때 쯤 한 떼의 아이들이 “비스킷 주세요!” 하며 달려온다. 그러나 오늘은 비스킷이 이미 다 팔렸다. 비스킷을 먹으며 카페에서 숙제를 하고 가려던 아이들의 얼굴에 실망한 빛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웃 신학대학에 다니던 영국인이 고향에서 즐겨 먹던 것이라며 일러주었다는 주먹만 한 비스킷은 싸고 맛있어 아이들에게 특히 인기다. 주인은 독일에서 살며 익힌 독일식 케이크를 굽는다. 그중에서도 딸기 타르트와 비슷한 에어드베어 쿠흔은 동네 작은 카페의 케이크라기엔 정말 훌륭한 맛이다.

‘카페나루’의 아메리카노와 크림치즈바게트. 각 2500원과 1500원으로 가격도 ‘착하다’.

퇴근시간이 되면서 ‘카페나루’는 동네 연인들, 부부들의 만남의 장소가 된다. 옹색한 실내에서는 대학생들의 웃음소리가 왁자하다. 그러나 동네 사람들은 그들의 소란마저 귀여운 모양이다. “뭐가 저리 재미있을까?” 하며 허허 웃는다. 오랫동안 살아온 정겨운 골목에 평상을 내놓고 앉아 쉬며 놀며 하루를 보낸 느낌이었다.

우리도 언제부턴가 카페라는 곳을 드나들며 서양차를 즐긴다. 그러나 그곳에는 만날 사람이 따로 있고 그곳에서 할 일이 따로 있다. 옆 테이블의 사람은 타인이고 주인은 차를 팔고 나는 값을 치르고 차 한 잔과 테이블을 잠깐 빌려 쓸 뿐이다.

예전의 우리에게는 카페 대신 주막이나 사랑방이 있었다. 결코 너는 너, 나는 나일 수 없는 공간이었다. 누구든 쉽게 말을 트고 벗이 되는 공간이었다. 세상이 변했다고 하나 그래도 위로가 되는 것은 사람과의 따뜻한 교류, 인정이다.

다행히 현기증이 일 정도로 바쁘게 돌아가는 이 도시 곳곳에도 우리의 옛 주막과 같은 동네 카페들이 있다 하여 찾아가 봤다. 결코 화려하지 않은 그 카페들을 돌아보고 느낀 것은 주인들이 하나같이 천진한 꿈의 소유자라는 것이다. 애와 어른 모두에게 편안한 놀이터, 삶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나누어 질 수 있는 친구, 사람에 대한 믿음과 배려로 아름다워진 일상…. 그 꿈 덕분에 이 삭막한 도심에서 가쁜 숨을 고르고 소박한 여유와 낭만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런 공간이 더 많아진다면 세상은 더 살 만해지지 않을까.

글=윤서현 기자,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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