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구꽃이 핀 ‘카페나루’ 마당에는 밤이 이슥하도록 동네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산에 오르는 사람들이 뜸해지나 싶으니 동네 아주머니들이 마당으로 하나둘 모여든다. 그야말로 집안일을 하다 슬리퍼 끌고 나온 폼이다. 아기를 둘러업고 온 아줌마는 배 불러 다니다 얼마 전 둘째를 낳고 산후조리를 마치자마자 나왔다. 그들의 한바탕 수다가 잦아들 때 쯤 한 떼의 아이들이 “비스킷 주세요!” 하며 달려온다. 그러나 오늘은 비스킷이 이미 다 팔렸다. 비스킷을 먹으며 카페에서 숙제를 하고 가려던 아이들의 얼굴에 실망한 빛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웃 신학대학에 다니던 영국인이 고향에서 즐겨 먹던 것이라며 일러주었다는 주먹만 한 비스킷은 싸고 맛있어 아이들에게 특히 인기다. 주인은 독일에서 살며 익힌 독일식 케이크를 굽는다. 그중에서도 딸기 타르트와 비슷한 에어드베어 쿠흔은 동네 작은 카페의 케이크라기엔 정말 훌륭한 맛이다.
‘카페나루’의 아메리카노와 크림치즈바게트. 각 2500원과 1500원으로 가격도 ‘착하다’.
우리도 언제부턴가 카페라는 곳을 드나들며 서양차를 즐긴다. 그러나 그곳에는 만날 사람이 따로 있고 그곳에서 할 일이 따로 있다. 옆 테이블의 사람은 타인이고 주인은 차를 팔고 나는 값을 치르고 차 한 잔과 테이블을 잠깐 빌려 쓸 뿐이다.
예전의 우리에게는 카페 대신 주막이나 사랑방이 있었다. 결코 너는 너, 나는 나일 수 없는 공간이었다. 누구든 쉽게 말을 트고 벗이 되는 공간이었다. 세상이 변했다고 하나 그래도 위로가 되는 것은 사람과의 따뜻한 교류, 인정이다.
다행히 현기증이 일 정도로 바쁘게 돌아가는 이 도시 곳곳에도 우리의 옛 주막과 같은 동네 카페들이 있다 하여 찾아가 봤다. 결코 화려하지 않은 그 카페들을 돌아보고 느낀 것은 주인들이 하나같이 천진한 꿈의 소유자라는 것이다. 애와 어른 모두에게 편안한 놀이터, 삶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나누어 질 수 있는 친구, 사람에 대한 믿음과 배려로 아름다워진 일상…. 그 꿈 덕분에 이 삭막한 도심에서 가쁜 숨을 고르고 소박한 여유와 낭만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런 공간이 더 많아진다면 세상은 더 살 만해지지 않을까.
글=윤서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