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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헌정 질서 흔드는 '헌재 공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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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헌법재판소의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 위헌 결정으로 '관습헌법'이라는 말이 일약 유행어로 떠올랐다. 희화적으로 묘사되기도 하지만, 헌법이 우리들에게 다가설 수 있게 한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지난 대통령 탄핵 기각결정 이후 헌법에 따른 헌재의 판단을 정치적 우적(友敵) 관계에 따른 편가르기의 시각에서 보는 현상이 있어 우려를 낳는다. 누구보다 헌법을 규범으로서 존중하고 앙양해야 하는 국가기관들이 헌재를 해산해야 한다느니, 개혁 입법의 걸림돌이니 하며 헌법수호기관을 폄하하는 행위는 헌정질서로서 지키고자 하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무위로 돌릴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서구에서 헌법이 탄생할 수 있었던 계기는 권력을 왕정에서 민정으로 이행할 수 있게 한 근대의 이성적 인간들의 세기적 합의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특히 왕정과 민정을 각각 상징하는 권력으로서의 행정권과 입법권은 그 배경이 되는 군주와 시민계급 모두 힘을 가진 자여서, 이들 권력의 자의를 막을 수 있는 장치를 헌법에 두는 일이야말로 근대 헌법 제정의 선각자들이 가장 고심한 부분이기도 했다.

바로 그 고안물이 헌법을 지키는 일, 즉 헌정질서의 수호.유지를 직접적인 목적으로 하는 헌법기관의 설치였다. 비록 국민으로부터 직접적인 정당성은 받지 않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권력적으로 가장 덜 위험한 이 기관에 정부 권력이나 의회 권력의 과잉을 막는 최후의 보루로서 기능할 수 있는 역할을 준 것이다. 국민주권에 기초한 민주주의의 열정을 이성에 기초한 법치주의의 냉정으로 식힐 수 있게 함으로써, 헌정이라는 엔진을 과열됨이 없이 굴러갈 수 있게 한 것이었다.

최고 법원이 판단하기 때문에 또는 헌법재판소가 판단했기 때문에 복종할 것이라는 합의야말로 민정의 헌정질서를 가지게 된 시민혁명의 완성물이었다. 헌정은 유지되고 법적 평화는 지킬 수 있게 되었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어서 현행 헌법 역시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역사적 산물인 것이고 그 최대의 결실이 헌법재판 제도인 것이다.

누구나 다 이성과 판단력이 있다. 하지만 헌법국가에서의 최종적 이성은 최후적 헌법 판단자로서의 헌법재판관이다. 그들의 이성이 옳기 때문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판단했기 때문에 이를 이성적인 것으로 보아 복종한다고 하는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한 헌정 질서는 바로 설 수 없다.

헌법재판소의 수도 이전 위헌 결정을 정치적.이념적 편향에 따른 반(反)법률적 정치 선동으로 공격하고 이에 불복하도록 부추기는 듯한 언행, 선출된 권력은 곧 정의이므로 헌법도 무시할 수 있다는 권력 만능주의, 이런 헌법 무시의 분위기가 시민사회를 위협하고 국민을 분열시키고 그래서 헌정을 바로 세우게 하지 못하게 해 과열의 정치사회에 머물러 있게 한다. 지금도 국가보안법.사학관계법.과거사법.언론관계법 등 일련의 법안들로 유발된 헌정적 대치 상태가 헌정질서에 미치는 역기능이 큰 상황이다. 이러한 헌법의 위기에 공동체 연대의 붕괴를 막고 헌법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지식인들에게 시대의 방관자에서 벗어나 헌정의 냉정을 찾는 역할이 요구되지 않을 수 없다. 한 사람이나 무정형으로 결집된 대중의 말이 곧 법이 되는 인치주의로부터 작별을 고하며, 권력의 독선과 파편화된 개인들의 아집과 주장이 아닌 헌법이 제 목소리를 내도록 해 대한민국이라는 이 공동체를 관용과 조화의 사회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런 점에서, 국가의 핵심인 헌법이 홀대받고 있음을 반성하고 헌법의 정신과 가치를 지키면서 헌법을 국민 통합의 나침반으로 삼기로 뜻을 모은 사람들이 모이게 된 것은 헌정의 발전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거쳐야 할 의미 있는 일이라 여겨지는 것이다.

강경근 숭실대 교수,헌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