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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검찰 … “박기준 지검장 거짓말·폭언이 화 키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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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준규 검찰총장이 21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검 청사에서 열린 전국 공안부장 검사회의에 참석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서초동 대검 청사=김준규 검찰총장은 21일 오전 8시30분 긴급 간부회의를 소집했다. 20일 중앙일보 등의 보도에 이어 같은 날 밤 MBC PD수첩이 ‘검사와 스폰서’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프로그램을 방영한 데 따른 것이었다. 하지만 이 자리에 반드시 참석했어야 할 한승철 대검 감찰부장은 나오지 않았다. 건설업자 정모씨가 방송 인터뷰에서 “한승철 부장을 여러 차례 만나 접대했다”면서 최근의 사례까지 구체적으로 밝혔기 때문이다.

한 시간 넘게 진행된 회의에서 일부 간부들은 “악의적인 보도이고 진술의 신빙성이 떨어지는 내용이 많다”고 지적했다고 한다. 그러나 사태가 예상보다 심각하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었다. 특히 그간 수차례의 법조 비리 수사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스폰서 문화’가 또다시 수면 위에 올라왔다는 점에서 검찰 내부에서도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검찰이 이례적으로 발 빠르게 진상규명위원회 구성에 나선 것도 이러한 위기의식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번 사건에 연루된 일부 간부의 적절치 못한 대응이 사태를 증폭시켰다는 지적이 많았다. 한 검찰 간부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박기준 부산지검장이 금방 탄로 날 거짓말을 하고 취재진에 폭언을 한 것으로 비쳐지면서 화를 자초했다”고 말했다.

#부산지검 청사=‘태풍의 눈’으로 떠오른 부산지검은 이날 착잡한 분위기 속에서도 대검과의 온도 차를 보였다. 박기준 지검장은 이날 평소와 달리 지하 주차장에서 곧바로 집무실로 올라갔다. 이후 검찰 직원들을 동원해 기자들의 출입을 전면 통제했다. 박 지검장은 오후 회의에서 “검사들의 사기가 떨어지지 않게 하고 본연의 임무를 잘 하라”고 말했다고 한다. 부산지검은 전날 “(정씨의) 신뢰성 없는 일방적 주장에 불과하며 명예훼손에 해당한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이날은 아무런 입장을 내지 않았다. 부산지검의 한 간부는 대검의 대응에 대해 “검찰이 고지식하다고 할 정도로 원칙을 지켜야지, 머리 돌아가는 소리 들리게 행동하면 되겠느냐”며 우회적으로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그는 “정씨 사건도 봐주지 않다가 역풍을 맞은 것 아니냐. 원칙대로 한 사람에게 비난의 화살이 몰려서는 안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검찰총장의 결단=검찰 외부 인사 중심으로 진상규명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한 것은 검찰이 자체적으로 조사를 할 경우 결론이 어떻게 나든 간에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난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김 총장은 이 같은 소문이 나돌기 시작한 직후 이미 외부 인사를 위원장으로 하는 규명위를 준비하도록 지시했다. 진상 조사를 지휘할 채동욱 대전고검장에게도 “한 점 의혹 없이 투명하게 처리하라”는 입장을 전달했다고 한다. 채 단장은 22일 서울 고검에 마련된 조사단 사무실로 출근한 뒤 부장검사급 1명과 평검사 5명 안팎을 지원 받아 곧바로 조사에 착수한다. 대검 관계자는 “규명위가 내놓는 의견을 100% 수용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조사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씨의 문건에 부산·경남 일대 검사들에게 향응을 제공한 정황이 매우 구체적으로 제시돼 있다. 검사들의 접대 날짜와 장소, 메뉴, 참석자, 여종업원 팁, 자신이 결제한 수표의 일련번호까지 적혀 있다. 적당히 넘어가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정씨의 문건에는 잘못된 부분이 적지 않아 신빙성 논란도 커질 것”이라고 했다. 문건에는 2001년 부산지검 공판부에 근무한 조모 검사를 접대한 부분이 나오지만 조 검사는 당시 부산지검에 있지 않았고 공판부 근무 경력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전진배 기자, 부산=이현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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