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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년 전 신라 화랑이 새긴 한자 우리말식 어순을 빼닮은 이유는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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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기록을 가장 오래 남기는 방법은 단단한 돌에 새기는 것이다. 1500여 년전 두 소년의 맹세가 지금까지도 선명히 남아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임신년 6월 16일 두 사람이 함께 맹세하여 쓴다. 하늘 앞에 맹세한다. 지금으로부터 3년 이후 충도(忠道)를 확실히 잡고 과실이 없길 맹세한다.(…) 시(詩)·상서(尙書)·예기(禮記)·춘추전(春秋傳)을 차례로 습득하기를 맹세하되 3년으로 하였다.’

신라 진흥황 때인 552년, 혹은 진평왕 집권기인 612년. 두 소년이 두 뼘 길이의 납작한 돌에 이 같은 맹세를 기록한다. 1934년 경주시 석장사터 부근 언덕에서 발견된 ‘임신서기석’(壬申誓記石·보물 1141호)이다. 화랑의 정신을 담은 것으로 해석되는 이 작은 돌이 처음으로 서울 나들이를 했다. 국립중앙박물관 고고관 신라실에서 20일 개막해 6월 20일까지 열리는 테마전 ‘6세기 신라를 보는 열쇠 문자(文字)’에 소개된다.

임신서기석의 한자는 우리말 식 어순을 따른다. 가령 ‘하늘 앞에 맹세한다(天前誓)’는 중국식 어순으로 하면 ‘誓前天’이 돼야 한다. 박방륭 중앙박물관 유물부장은 “신라의 옛 금석문이 대체로 그렇다”고 설명했다. 5~6세기 신라의 호우총과 서봉총에선 ‘광개토지호태왕’이나 ‘태왕’ 등 고구려의 왕을 지칭하는 문자가 새겨진 그릇이 출토됐다. 신라가 고구려를 통해 한자를 들여온 것으로 파악되는 지점이다. 한자 도입 초기라 우리 식 어순에 따라 쓰는 것이 되려 자연스러운 일이었던 셈이다.

전시에는 포항 중성리비(복제품), 영일 냉수리비, 북한산진흥왕순수비(국보 3호), 남산신성비 등이 나왔다. 6세기 신라는 영토를 확장하고(진흥왕순수비), 율령을 반포했다.(중성리비·냉수리비) 성을 쌓는 작업에 노동력을 동원한 뒤 누가 언제 어느 구간을 맡았는지를 적고 ‘3년 안에 무너지면 벌을 받겠다’는 맹세까지 기록하게 했다.(남산신성비)

고고부 최성애 학예연구사는 “6세기 신라는 국호를 확정하고 율령을 반포하는 등 문자를 통치수단으로 삼아 비약적인 성장을 이뤘다”고 말했다.

드라마 선덕여왕을 통해 익숙해진 ‘덕업일신 망라사방(德業日新 網羅四方·덕업이 날로 새로워져 사방을 망라한다)’이란 문구로 전시장 입구를 장식한 것은 그런 까닭에서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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