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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돋보기] 열쇠 꽂은 채 세워둔 차 도난 → 사고 땐 차주 책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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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열쇠 관리를 소홀히 해 차를 도난당해 일어난 사고에 대해서는 차 주인이 모두 책임져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61단독 한소영 판사는 14일 도난당한 승용차에 치여 오른쪽 다리를 잃은 최모(48.여)씨가 차 주인의 보험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보험사는 1억2000여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한 판사는 "열쇠를 제대로 챙기지 않고 일반인이 통행하는 도로에 차를 장시간 둔 관리상 과실로 차를 도난당해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에 차 주인에게 민법상 불법 행위의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민법(제750조)은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 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사람은 배상 책임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차 주인 정모씨는 2002년 9월 경기도 안양시 편도 2차로 도로에 차를 세워두고 술을 마신 뒤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갔다.

정씨는 밤 늦게 집에 도착해 차 열쇠가 없어졌다는 것을 알게 됐지만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 사이 차를 훔친 운전자는 다음날 새벽 사고를 내자 차를 그대로 둔 채 달아나 경찰 조사에서도 신분이 밝혀지지 않았다.

최근 법원은 열쇠를 잘못 관리해 일어난 사고에 대해서는 차 주인이 일부분이라도 책임져야 한다는 판결을 내리는 추세다. 서울고법은 지난 9월 주차 편의를 위해 백화점 주차장에 열쇠를 꽂아 놓았다가 다른 사람이 차를 몰아 난 사고와 관련해 "차주에게도 20%의 책임이 있다"고 판결한 바 있다.

이번 사건의 경우에는 ▶일반적인 주차장이 아닌 도로변에 차를 세웠고 ▶열쇠를 차에 꽂아뒀는지, 차 주변에 떨어뜨렸는지조차 제대로 몰랐다는 점 등 때문에 차 주인이 100% 책임을 지게 됐다.

그러나 주차장에 세워둔 차를 절도범이 유리창을 깨고 훔쳐간 경우 등이라면 사고가 나도 차주에게 책임이 없다.

정씨는 또 책임보험을 초과하는 부분에 대해 무제한으로 보상해주는 종합보험에 가입해 보험회사가 배상금 전부를 지급하게 됐다. 책임보험은 사고로 다른 사람의 신체나 재산에 손해를 끼쳤을 경우 피해자에게 일정 금액을 보상해주는 것이다.

한 판사는 "책임보험의 근거가 되는 자동차손해보장법은 '자기를 위해 자동차를 운행하는 사람'(3조)에 한해 적용되는데 이 사건에서는 차 주인이 직접 운전을 하지 않아 책임보험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한문철 변호사는 "만약 정씨가 책임보험에만 가입했다면 배상금 전부를 개인적으로 물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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