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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일조량 천재지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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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오뉴월 하루 볕이 무섭다고 한다. 때는 바야흐로 모내기가 끝나고 벼가 쑥쑥 자라는 시기다. 이 무렵엔 영양분 못지않게 햇빛이 중요하다. 광합성을 위해서다. 마침 낮이 가장 길다는 하지(夏至)도 이즈음이다. 그런데 이 시기에 비가 잦고 구름이 많으면 농민들 이마에 주름이 팬다. 햇빛이 부족하면 벼의 잎새가 길고 얇아져 단위면적당 엽록소와 세포 수가 감소한다. 자연히 광합성과 물질생산 능력이 떨어진다. 결과는 쭉정이 같은 수확이다. 벼 생장기의 일조량(日照量)은 하루의 차이가 이처럼 크다. 음력 오뉴월 하루 볕이 무서운 이유다. 물론 모든 광합성 식물에 적용되는 얘기다.

일조량은 공룡 멸종의 직접 원인으로 지목된다. 지난달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지질학자와 고생물학자 41명으로 구성된 국제전문가단의 연구 결과가 실렸다. 6500만 년 전 직경 10㎞짜리 소행성이 멕시코의 유카탄 반도에 충돌하면서 공룡시대가 끝났다는 것이다. 당시 엄청난 지진과 쓰나미로 반경 1500㎞ 내 모든 생물이 사멸했지만, 무엇보다 충돌로 생긴 먼지와 유황 성분이 햇빛을 가려 지구가 기나긴 겨울에 들었다는 것이다. 결국 극심한 일조량 부족이 지구상 동식물의 3분의 2를 사라지게 한 것이다. 한편으론 인간이 지구의 지배종족으로 자리 잡을 기회를 얻었지만.

필리핀 피나투보 화산이 1991년 분출했을 때도 2000만t의 이산화황이 지상 40㎞ 성층권까지 솟아올랐다. 이 연무질(煙霧質) 미세입자가 지구를 감싸 태양광을 반사시키면서 이후 1년간 평균 기온이 이전 10년에 비해 섭씨 0.58도 낮아졌다. 이 역시 일조량 감소가 빚은 효과다. 그러자 최근 일부 과학자는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인공적으로 태양광선의 복사 에너지를 반사시킬 물질을 성층권에 쏘는 방안도 연구 중이라고 한다.

올해 우리나라는 봄이 실종됐다. 샤갈의 마을엔 3월에 눈이 내린다지만, 지구온난화 속 남녘에는 4월에도 눈이 내렸다. 벚꽃 위에 눈꽃이 피면서 채소·화훼·과수 농가엔 시름이 쌓였다. 일조량 때문이다. 서울의 경우 춘삼월 일조시간이 평년의 68%에 불과했다. 이에 정부가 일조량 부족도 천재지변으로 인정해 피해 농가에 모두 3467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런데 주말께 아이슬란드의 화산 분출물이 우리나라를 습격한다고 한다. 유럽 항공노선을 꽁꽁 묶은 그 주범이다. 큰 영향은 없다지만, 혹여 그나마 부족한 일조량에 보자기만 한 그늘이라도 더할까 걱정이다.

박종권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