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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자 명의 ‘편법 CD’ 2700억원대 유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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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개인 사업가 김모씨는 2008년 12월 건설 시행사업을 시작하면서 투자자를 모집했다. 그는 자금력이 많은 것처럼 포장하고 싶어 브로커 신모(58)씨를 소개받았다. 신씨는 김씨에게 제3자 명의의 양도성예금증서(CD) 발행을 제안했다. 제3자 명의 CD란 발행 명의인이 실제 자금주와 다른 CD를 말한다. 신씨는 명동의 사채업자에게 100억원을 빌린 뒤 이 돈으로 은행에서 김씨 명의로 CD를 발행했다. CD 사본은 김씨에게 넘기고 진본은 H증권에 내놓았다. H증권은 이 CD를 자산운용사에 팔았다. 김씨는 1억원당 170만원씩 쳐서 모두 1억7000만원의 수수료를 신씨에게 보냈다.

신씨는 이 같은 방법으로 2008년 10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24개 업체에 모두 556억원어치의 CD 발행을 알선했다. 그는 수수료로 5억6000여만원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1부는 2700억원어치의 제3자 명의 CD 발행을 알선한 조직을 적발했다고 19일 밝혔다. 검찰은 신씨 등 브로커 5명을 구속기소했다.

채모(56)씨 등 브로커와 회사 대표 등 12명은 불구속 기소했다. 채씨는 62개 업체를 대상으로 2160억원어치의 CD 발행을 알선하고 12억6000여만원의 수수료를 챙긴 혐의다.

알선 브로커들은 주로 건설업체를 대상으로 제3자 명의 CD 발행을 원하는 회사를 모집했다. 건설업체는 회사 자본금을 부풀려 실제보다 시공능력을 높게 평가받고 싶었기 때문에 이들의 유혹에 쉽게 넘어갔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머니게임’에 참가한 모든 당사자는 이익을 보는 구조였다. 브로커는 수수료를,사채업자는 이자를, 증권사는 중개 수수료를 각각 챙겼다. 은행은 예금유치 실적을 높일 수 있었다. 검찰은 현재 발행·유통된 CD의 상당수가 제3자 명의 CD로 추정하고 있다.

제3자 명의 CD는 회사의 자금 상황을 부풀리거나, 분식회계·가장납입·횡령 등을 감추는 데 이용될 수 있다. 실제로 제조업체 대표 우모(53)씨는 회사 돈에서 횡령한 8억원을 장부상으로 메워넣기 위해 브로커 신씨를 통해 8억원짜리 제3자 명의 CD를 발행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철재 기자

◆양도성예금증서(CD)=다른 사람에게 양도가 가능한 정기예금증서. 자유로이 사고팔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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