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속 옌볜… 중국동포 타운 3]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중소 건설업체 사장 李모씨는 지난 4월 자신이 고용했던 중국동포 黃모씨가 건설현장에서 다친 뒤 큰 곤욕을 치렀다.

李씨가 黃씨에게 적절한 치료비와 보상금을 약속했는데도 이를 못 믿은 黃씨가 중국동포 해결사들을 내세운 것이다. 무리한 요구와 협박에 시달리다 3천5백만원을 주고 겨우 합의했다는 李씨는 "다시는 중국동포를 쓰지 않겠다" 고 말했다.

1999년 이후 국내에 체류하는 중국동포들이 크게 늘면서 내국인과 갈등을 빚거나, 조직폭력배가 등장하는 등 갖가지 부작용이 생겨나고 있다.

◇ 갈등.슬럼화 우려도=금공장을 운영하는 金진영(가명)씨는 지난해 채용한 30대의 중국동포에게 내국인 근로자와 같은 월급을 주며 1년여 동안 기술까지 가르쳤다. 하지만 이 중국동포는 어느 정도 숙련되자 곧바로 월급을 조금 더 주는 경쟁업체로 가버렸다.

金씨는 "불법체류자임에도 불구하고 같은 동포라는 생각에서 최선의 대우를 해줬는데 뒤통수를 맞은 느낌" 이라고 말했다.

"요즘 중소업체 경영자 사이에 중국동포보다 몽골인이 성실하고 믿을 만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는 한 염색공장 사장의 말은 중국동포 근로자 다루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서울 구로공단에서 일하는 중국동포 李상철(가명.40)씨는 "많은 한국인 사업주가 우리를 돈만 아는 족속으로 여긴다" 며 "따뜻하게 대해주는 한국인을 배신할 동포는 거의 없을 것" 이라고 반박했다.

'중국동포타운' 이 형성되고 있는 서울 구로공단 일대의 주민들은 또 다른 고민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 전자대리점을 운영하는 朴모씨는 "큰 거리와 골목이 갈수록 지저분하고 살벌해지고 있다" 며 "이러다가 집값이나 가게 권리금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 고 우려했다.

◇ 밀입국 알선에 마약상까지=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밀입국 브로커(중국동포)는 "내가 몸 담은 조직은 중국과 한국에 각각 모집.운반.수금 담당을 두고 중국동포들을 한국에 데려오고 있다" 고 털어놓았다.

그는 "조직원이 1백명에 이르고, 서울에 밀입국자를 숨겨놓는 임시 거처까지 마련해 놓았다" 고 했다.

그는 또 생아편.대마초를 양말 속에 가지고 다니며 몰래 팔고 있었다. 몇 개비 말아 피울 수 있는 대마초를 5만원에 판매한다는 것이다.

중국동포타운에서는 위조문서가 공공연하게 거래된다. 서울 가리봉동 조선족교회 화장실에는 '주민등록증 필요하신 분 연락주세요' 라는 문구가 전화사서함 번호와 함께 적혀 있다.

◇ 원정 조직=사업차 한국과 중국 동북3성을 오가는 정모씨는 얼마 전 가리봉동에 아는 중국동포를 만나러 갔다가 우연히 옌볜(延邊)에서 활동하는 폭력조직의 중간보스를 만났다.

중국에서 사업 파트너의 소개로 몇차례 술자리를 같이 했던 인물이었다. 그 중간보스는 정씨에게 "중국에서 한국으로 입국할 때 사채를 빌려갔던 사람들한테서 원금과 이자를 받아내기 위해 최근 들어왔다" 고 밝혔다.

중국동포타운에서 유흥업소를 운영하는 한 내국인은 "술집.음식점 등을 사들이기 위해 중국에서 '검은 돈' 이 흘러들고 있다" 며 "실제로 얼마 전 중국 폭력배 10여명이 이곳에 투자하기 위해 나타났었다" 고 말했다.

◇ 도박 성행=지난달 29일 밤 가리봉동 인근 모 여관. 한국인 2명과 중국동포 2명이 마작을 하고 있었다. 이들은 아침부터 대림동과 구로동에서 판을 벌인 뒤 이곳에서 세번째 마작패를 돌리고 있었다.

중국동포 정보현(34.가명)씨는 무려 7백80만원을 잃은 상태였다. 정씨는 "마작판은 한국인이 개설한다" 며 "하고 싶지 않아도 한번 마작판에 발을 들여놓으면 한국인이 (불법체류)신고를 한다고 위협해 빠져나오지 못한다" 고 말했다.

◇ 퇴폐업소 종사=지난 4일 오후 중국동포타운의 노래방. 취재팀이 앉아 있는 방에 중국동포 접대부 공정은(가명.27)씨가 들어왔다.

"지난해 산업연수생으로 입국해 공장에서 일하다 쉽게 돈벌기 위해 접대부로 나섰다" 는 공씨는 "10여명이 노래방 건물 꼭대기에 기거하며 봉사료로 1만~1만5천원을 받는다" 고 말했다.

일부 여성들은 매춘도 한다. 노래방 밖으로 나갈 때는 손님이 주인에게 3만원을 낸다. 자리를 비우는 만큼 돈을 내는 티켓다방 식 성매매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K단란주점을 운영하고 있는 金모씨는 "중국동포타운 일대에 최소한 2백여명의 중국동포가 접대부로 일하고 있다" 고 말했다.

***불법체류 경로

중국에 사는 동포들이 한국에 입국해 불법체류하는 경로는 크게 다섯가지다.

1. 산업 연수생 위장

중국 브로커들이 한국에서 일할 산업연수생을 모집한다. 중국동포들은 이런 브로커에게 거액의 수수료를 주고 산업연수생 자격을 얻는다.

입국한 동포들은 몇달간 일하다 지정된 사업장에서 이탈해 불법 취업한다. 연수생은 체류기간이 제한되고 임금도 적기 때문이다.

2. 허위서류로 출장

중국 브로커들은 한국인과 짜고 국내업체에 출장 업무가 있는 것처럼 관련 서류를 꾸민다.

브로커들은 이미 모집해 둔 동포들의 신상명세와 함께 허위 서류를 중국의 한국 대사관에 제출해 단기 비자를 받아낸다.

한국에 입국해서는 국내 브로커의 도움으로 불법 취업한다.

3. 초청장 · 여권 위조

서류위조단이 만든 가짜 친척 초청장을 사들여 한국에 연고가 있는 것처럼 속여 비자를 받거나, 한국 관광객 등의 분실 여권을 변조한 여권을 이용해 입국한다. 입국심사 과정에서 종종 위조 여권 사실이 드러나 강제추방되고 있다.

4. 위장 결혼

국내 브로커가 농촌이나 빈곤층의 총각들을 상대로 결혼 희망자를 끌어들인 뒤 중국에 연락하면 중국 브로커는 희망자를 모집한다. 서류위조단은 기혼여성들에게는 가짜 호적까지 만들어준다.

5. 밀입국

중국 어선이나 여객선을 타고 공해상을 통해 한국으로 들어온다. 수수료는 후불(後拂)방식. 입국에 성공하면 브로커에게 5만위안(약 6백만원)을 주고, 실패하면 철수했다가 재입국를 시도한다. 밀입국 성공률은 절반 가량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회부 기획팀=이규연.김기찬.조강수.강병철 기자, 안부근 조사전문위원

***'서울 China'

구로공단 일대에 중국동포타운이 생기면서 서울에는 크게 세 갈래의 중국계 지역사회가 공존하게 됐다.

한국색이 섞인 중국동포와 대만(중화민국)계의 화교, 대륙계 중화인민공화국(중국) 국적자들이 각각 구로공단.연남동.명동 일대를 근거지로 해 독특한 문화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코리안 드림을 꿈꾸고 대거 입국한 중국동포들은 가리봉.대림.구로.가산동 일대에 3만여명이 집단 거주하고 있다.

이들 중 대부분은 귀국 시기를 어긴 불법체류자들로 파출부.막노동을 주로 한다. 이들은 남부순환로에 인접해 교통이 편리하고 방값이 저렴한 이 일대를 선호한다.

이곳에서는 한족(漢族)들이 잘 먹지 않는 양고기 꼬치를 맛볼 수 있다.

1882년 임오군란(壬午軍亂)때 청나라 군대를 따라 들어온 상인들이 효시가 된 한국내 화교는 친 대만계가 주류다.

이들은 명동과 북창.소공.회현동과 명동에서 주로 요식업과 잡화상을 하며 정착했다. 70년대 초 도심 재개발로 상당수가 미국.캐나다로 이주했고, 92년 한국 정부가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한 뒤부터 마포구 연남동.서대문구 연희동 일대로 몰려들었다. 2천5백여명이 주로 중국음식점.의류중개상에서 일하고 있다.

대만대표부 관계자는 "대만에서 손님이 올 때 자연스레 연남동과 연희동의 음식점을 단골로 찾게 된다" 고 말했다.

독특한 향을 풍기는 대만 음식을 찾으려는 관광객들도 단체로 이곳을 찾고 있다.

명동의 중국대사관과 회현동 중국계 소학교 주변은 대만계가 떠난 92년 이후 중국 국적자들로 채워지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사업 목적으로 장.단기 체류하거나, 이들을 겨냥한 요식업.숙박업계 종사자다.

장세정 기자

사진=김진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