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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윤봉길 의사 연구 외길 40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윤봉길(尹奉吉)의사의 발자취를 더듬는 데 평생을 바친 사람.

충남 예산 임성중 이상재(李尙載.74)이사장이 그 주인공이다.

"눈을 감으면 선생의 파란만장한 일대기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고 스스로 말할 정도로 40여년을 尹의사 연구에 쏟아 왔다.

尹의사와 전혀 인연이 없는 李씨는 1960년에 이 일을 시작했다. 그는 서울대 사범대를 나와 예산농고로 부임해 당시 예산농고 사무과 직원이었던 윤남의(尹南儀.85.윤봉길 기념사업회 상임고문)씨를 만났다. 그는 尹의사의 막내동생이다.

李씨는 "형님의 궤적을 찾는 일을 도와달라" 는 尹씨의 청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독립운동의 큰 획을 그은 尹의사에 대한 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이었지. 하지만 자료수집이 쉽지가 않았어요. 尹의사가 중국 상하이 홍커우공원에서 폭탄을 투척한 다음날인 1932년 4월 30일 일본 헌병들이 충남 예산군 덕산면에 있던 尹의사의 집에 들이닥쳐 각종 자료를 모두 불태워버렸거든. 선생이 읽던 서적이나 입던 옷가지까지 다…. "

李씨는 尹의사가 1930년 거사를 위해 중국으로 떠나기 전 활동했던 예산.덕산.홍성.청양 등지를 돌며 尹의사와 함께 활동했던 독립운동가들을 만나 증언을 들었다. 부인 윤계순(柳桂順.72)씨는 "남편은 주말마다 집을 비우고 돈도 숱하게 써 처음엔 원망도 했지만 열성과 집념에 지고 말았다" 고 회상했다.

이런 노력 끝에 李씨는 93년 尹의사가 조직했던 비밀 항일단체 '유교부식회' 의 존재를 밝혀냈다. 유교부식회는 尹의사가 26년 고향인 충남 지역의 젊은 지사들과 함께 결성해 지역 청년들에게 유교를 가르치며 농촌 계몽운동을 벌였던 단체.

李이사장은 '매헌(梅軒) 윤봉길 의사의 농촌부흥운동에 관한 연구' 라는 논문을 통해 그때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이같은 사실을 세상에 알렸다.

지난달에는 尹의사의 미공개 친필 한시(漢詩)도 찾아냈다.

尹의사의 친구였던 전용혹(田溶彧.85년 사망)선생이 소장하던 책을 사모으는 과정에서 청양군 운곡면사무소가 28년 발행한 공문의 뒷장에 尹의사가 붓으로 쓴 시 한 편을 발견한 것이다.

'歷歷光陰 何太忽(흘러가는 세월이 어찌 그렇게도 빠르냐)/春風已過 夏霖晴(봄바람도 이미 지나고 여름 장마가 개였도다)/禮靑洪客 多情席(예산.청양.홍성의 객이 다정하게 앉았는데)/薄酒三盃 一詠聲(값싼 술을 삼배하고 한 곡조 노래를 부른다). '

중국으로 떠나기 전 친구들과 마지막 흥취를 즐기는 모습을 담은 글이었다.

李이사장은 최근 거동이 부쩍 불편해졌다. 그래서 자신이 못다한 尹의사 연구를 역사학계에서 마무리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그는 "독립운동의 역사를 바로 아는 것이야말로 극일(克日)의 첫걸음" 이라고 강조했다.

예산=남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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