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이 이 정도로 진행될 때까지 뭘 하셨나요?”
병원 진료실이나 입원실을 찾은 지인들이 환자의 고통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자주 사용하는 말이다. 하지만 힘들게 투병 중인 환자나 보호자에겐 아픈 상처를 덧나게 하는 잔인한 말이다. 때론 환자의 고통을 덜어줘야 할 진료 의사도 무심결에 이런 말을 한다.
치료가 힘들 정도로 심해진 병 때문에 가장 괴로운 사람은 단연 환자 본인이며, 그다음엔 환자 옆에서 동고동락하는 보호자다.
그들에겐 병이 위중해진 원인을 명명백백하게 가리는 일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병세를 자꾸 물어보거나 ‘이리이리 했으면 이 지경까지는 안 됐을 텐데…’라는 식의 사후 약방문을 제시하는 일도 삼가야 한다. 또 환자의 심정을 공감한다는 명분으로 내뱉는 섣부른 위로도 고통을 가중할 위험이 있다.
진정으로 환자·보호자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면 묵묵히 작은 실질적 도움을 주면 된다. 예컨대 혈액이 필요한 환자에겐 한 번이라도 자신의 혈액을 수혈해 주고, 시간이 허락할 땐 보호자 대신 하룻밤을 새워준다면 환자·보호자는 큰 위로를 받을 것이다.
환자와 함께 있는 시간엔 병과 무관한 이야기, 특히 환자가 잠시라도 자신의 병을 잊은 채 웃을 수 있는 화젯거리를 들려주면 된다.
이는 비단 질병에 국한되는 게 아니다. 갑작스레 불행을 겪게 된 가족·친구·친지·이웃 등 지인들을 만날 때 지켜야 할 일종의 수칙이다.
지난달 26일 저녁, 천안함 침몰이란 국가적 비극이 발생했다.
온 국민이 슬픔과 불안에 잠긴 상황이니 실종자·사망자 가족의 고통은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생존 장병 역시 사건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 위험이 있는데, 특히 지금은 함께한 수많은 동료가 실종·사망한 상황이다. 실제 지난 7일, 윤한두 수도병원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생존자 중 약물이나 상담 치료를 받는 급성 스트레스 환자가 6명, 정신적 후유증 발생 가능성이 큰 고위험군은 14명, 중위험군이 17명, 저위험군이 21명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의료계에선 애초부터 생존자와 실종자 가족에 대한 정신건강을 걱정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사망자
실종자·사망자 가족은 자신의 힘든 모습까지 보여줘야 할 공인이 아니다. 범죄자를 추궁하듯 “지금 심경이 어떠냐?”라는 식의 질문을 받으며 고통을 추가해야 할 이유는 더더욱 없다.
정신의학적으로는 비극적 참사를 경험한 사람이 뉴스 등에 나오는 참사 장면 자체를 접하지 않도록 주변 사람들이 조심하는 게 원칙이다. 고통의 순간을 한 번이라도 덜 떠올리게 하기 위해서다.
지금은 겉으로 아무렇지 않게 보이는 실종자·사망자 가족과 생존 장병도 몇 주 혹은 몇 달이 지난 뒤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에 시달릴 가능성은 상존한다.
생존자의 정신적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다면 이들의 고통스러운 상황을 시시각각 파악하기 보다는 그 누구라도 기회 닿는 대로 이들의 절규를 묵묵히 경청하고 공감해줘야 한다.
황세희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