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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아직도 돈 주고 공천 따는 세상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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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한나라당 이기수 여주군수가 지역구 국회의원에게 ‘공천 헌금’을 건네려다 구속된 사건은 우리 풀뿌리 민주주의의 어두운 이면(裏面)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민선(民選) 지방선거를 시작한 지 15년이 됐건만 아직도 돈으로 공천을 따내겠다는 저질 정치문화가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시장이나 군수 공천을 받으려면 2억원은 껌값이라고 하더라”는 말이 버젓이 떠도니 기가 막힐 뿐이다.

‘공천 장사’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히 기초(일반 시·군·구) 단체장과 의원에 대한 공천제는 부작용을 양산하고 있다. 공천권을 쥔 국회의원이나 정당 책임자들이 이를 남용하고, 그 대가로 금품을 수수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적발돼 왔다. 특정 지역에선 특정 정당의 공천만 받으면 당선이 보장된다. 그러니 돈 뿌리는 걸 마다할 턱이 없다. 바로 매관매직 행위인 것이다.

여주도 공천이 당락을 결정하는 곳으로 분류된다. 재선에 도전하려던 이 군수는 공천에 목을 매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군수는 16일 서울에서 한나라당 이범관 의원의 차 안에 ‘기념품’이 든 쇼핑백을 두고 갔다고 한다. 이를 돌려주려던 이 의원 측은 이 군수 차량을 궁내동 서울 톨게이트까지 쫓아가 경찰이 입회한 가운데 현금 2억원을 확인했고, 이 군수는 현장에서 체포됐다. ‘공천용 돈다발’을 놓고 대낮에 경부고속도로에서 차량 레이스를 펼치는 코미디가 연출된 것이다. 한심한 정치 수준이 부끄러울 뿐이다.

‘여주 사건’은 드러난 빙산의 일각이다. 공천 장사가 전국적인 현상이라는 데 우려를 더 한다. 최근 중앙선관위는 기초의원 후보자에게서 1억여원을 받은 혐의로 국회의원 보좌관에 대한 수사를 의뢰했다. 전북 익산 지역에서도 ‘공천헌금 요구설’이 제기됐다. 정치권은 기득권 유지를 위한 정당 공천제를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 유권자들도 ‘지팡이만 꽂아도 당선된다’는 정치인들의 오만이 자신들의 ‘묻지마 투표’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번 지방선거에선 유권자가 깨어 있음을 보여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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