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학연구동 옆의 양지 바른 뜰에는 점심시간을 맞아 수목원 내 국립산림과학원의 연구원들이 ‘벤치그네’를 타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 그네는 보통 그네가 아니었다. 발로 굴러 그네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등을 기댄 편안한 자세에서 위에서 늘어뜨린 줄을 당겨 움직였다. 줄은 도르래 세 개를 거쳐 벤치 뒤쪽에 연결돼 있었다. 줄을 당기면 의자가 뒤로 당겨지고, 줄을 놓으면 의자가 앞으로 가는 식이었다.
그네를 즐기던 박영란(26·여) 연구원은 “손으로 당기니 힘이 덜 들고 편하다”고 했다. 이 벤치그네는 휴일마다 개방되는 홍릉수목원의 명물이 됐다. 특히 어린이 방문객들에게 인기가 많다.
이를 고안해 낸 산림과학원 이동흡(54·환경소재공학과장·사진) 박사는 “발을 구를 힘이 달리는 노인을 위해 만들었는데 젊은 사람들도 좋아한다”며 웃었다. 줄을 당기는 힘을 이용해 조명까지 밝힐 수 있다.
국립산림과학원 연구원들이 점심시간을 맞아 이동흡 박사가 만든 벤치그네를 타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이 그네는 발로 구르는 대신 손으로 줄을 당기도록 돼 있어 힘이 덜 들고 훨씬 편안한 자세로 탈 수 있다. [조용철 기자]
그의 발명품 중 가장 눈에 띄는 건 ‘야채 타워’다. 사각 틀에 흙을 채워 만든 화분이다. 윗면이 아니라 옆면에 작은 틈을 내고, 거기에 상추·치커리·토마토·부추 같은 걸 심는다. 야채타워는 모터로 회전한다. 아파트 발코니에 세워놓으면 회전 모터로 네 면이 골고루 햇볕을 받게 된다. 분수를 설치해 화분 아래 물통의 물을 자동으로 끌어올려 화분을 적신다. 이 박사를 도와 목공일을 하는 임학순(67)씨는 “상추를 심으면 4~5인 가족이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충분히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자란다”고 전했다. 그는 “전기요금이 일주일에 1800원 정도 들지만 실내 습도 조절과 어린이 식물 체험까지 할 수 있으니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산책길 안내등 어두워지면 자동으로 반짝거리고, 태양광 발전을 이용하므로 전기선 연결이 필요 없다(右).
그가 간벌재를 활용할 곳으로 처음 떠올린 건 도시의 콘크리트 옹벽을 덮는 목책(나무 담장)이었다. 담장과 옹벽 사이에 흙을 채우고 거기에 풀을 심어 푸르게 보이도록 하는 것이다. 콘크리트 벽면을 목재로 가리고, 목재와 옹벽 사이를 흙으로 채운 뒤 풀과 나무를 심는 방식이다. 2008년 경남 진주에 설치한 간벌재 벽면은 올 10월 전국체전을 앞두고 녹색도시로 변모하려는 진주시에 큰 도움이 됐다.
이 박사는 간벌재를 하천 가꾸기에도 활용한다. 흔히 폭우와 급류로 인한 세굴(강바닥이 파헤쳐지는 것)을 막으려고 계곡이나 하천에 콘크리트로 돌을 붙여 호안(벽)을 쌓는데, 그는 간벌재로 사각틀을 짜고 거기에 돌을 채우는 방식을 개발했다. 시멘트를 쓰지 않아도 되고, 돌 틈에 물고기가 자랄 수 있어 친환경적이다. 실제로 서울 양천구 목2동 주민센터 뒷산 계곡을 복원하는 데 이 방법을 적용했다. 강원도 영월의 국유림 계곡 200m 구간에도 연내 설치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실내 정원 다양한 크기로 제작할 수 있어 일반 가정은 물론 대형 빌딩의 로비를 장식할 수 있다(右).
그는 1979년 산림과학원에 들어온 이후 주로 목재 방부제나 신소재 분야 연구에 주력했다. 96~97년 전국 사찰을 돌며 흰개미가 목조 건축물에 얼마나 피해를 주는지 조사하고 대책을 강구하는 연구를 하기도 했다. 이 박사는 “나무는 물속에서 썩지 않고 200년 이상 버틸 수 있어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CO₂)를 광합성으로 흡수해 저장하는 효과가 있다”며 “하천 살리기를 기후변화 대응 방안으로 자리 잡도록 하는 것이 앞으로 할 일”이라고 말했다.
글=강찬수 환경전문기자
사진=조용철 기자
☞간벌재=나무를 촘촘히 심어 놓고 놔두면 콩나물처럼 가늘게 자라는 목재로서의 쓸모가 줄어든다. 그래서 숲이 될 때까지 서너 차례 솎아내기를 하는데 그때 베어낸 나무를 간벌해 얻은 목재라 해 간벌재 혹은 간벌목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