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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가계대출 또다시 과속, 한은의 선택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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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가계대출이 다시 ‘고속 주행’ 모드로 들어갔다. 지난 1월 잠시 브레이크를 밟는가 했더니 2월에 과속 본능을 또 드러냈다. 그래서 정부는 고민이다. 단속을 해야겠지만 쉽지 않다. 어설프게 하다간 교통체증을 일으키거나, 최악의 경우 대형 사고를 부를 위험이 있다.

16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가계대출 동향’에 따르면 2월의 가계대출은 한 달 만에 증가세로 돌아섰다. 예금취급기관(예금은 안 받고 대출만 하는 보험사·카드사 등을 제외한 금융사)의 가계대출 잔액은 550조4700억원으로 1월에 비해 7800억원 늘었다. 가계대출 잔액은 지난해 12월 말 550조7400억원으로 최고치를 기록한 뒤 올 1월엔 549조6900억원으로 잠깐 줄었다.

여기에 보험·카드사의 대출과 신용판매(신용카드로 물품을 구입한 것)를 합한 가계대출 총액은 지난해 말 이미 733조7000억원에 달했다. 1년 새 45조5000억원이나 늘었다. 그 속도가 심상찮다 싶자, 이명박 대통령도 지난달 25일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가계부채 문제로 국민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관리하라”고 지시했다.

가계대출이 늘어나는 건 주택담보대출 때문이다. 가계대출의 53%는 주택구입용이다. 2월만 해도 은행의 총 가계대출은 전월에 비해 2000억원 줄었지만, 주택담보대출은 7000억원 늘었다. 저축은행·신협·새마을금고 같은 비은행권에서도 8000억원 증가했다. 은행을 누르면 제2금융권으로 대출수요가 옮겨간다는 사실이 잘 드러난 셈이다.

가계대출 증가세를 꺾으려면 결국 주택담보대출을 줄여야 한다. 하지만 이게 쉽지 않다. 금리가 낮아서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14개월째 기준금리를 연 2%로 유지하고 있다. 시중금리도 덩달아 낮아지면서 이자 부담이 확 줄었다. 변동금리형 주택담보대출의 기준금리 역할을 하는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는 16일 2.45%를 기록하며 이달 들어 0.33%포인트 떨어졌다. 새로 도입한 주택담보대출 기준금리인 코픽스도 두 달 새 0.62%포인트 내려갔다.

이자가 싸니 대출수요가 늘어나는 건 당연하다. 주택담보대출이 늘면 집값 거품은 더 부풀어 오르고 경제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러면 금리를 올리면 되지 않느냐는 지적이 나오지만, 이것도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니다. 금리를 올리면 대출수요를 줄일 수는 있지만, 경제 전반에 무리를 줄 수 있다. 특히 대출을 안고 사는 사람들에겐 커다란 부담이 된다. 조금씩 살아나는 듯한 경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다.

김중수 한은 총재는 이걸 더 우려한다. 그는 나무(주택시장)보다는 숲(경제 전반)을 중시하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지금의 주택담보대출 규모가 위험한 수준은 아니라고 본다. 소득 상위 40% 가구에 가계부채의 70%가 몰려 있고, 주택담보인정비율(LTV)도 40%대 중반으로 다른 나라에 비해 안정적이라는 이유에서다.

대신 그는 “가계부채 문제는 무차별적 영향을 미치는 거시적 접근(금리 인상)이 아닌 미시적 접근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미시적 접근’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언급이 없다.

과도하게 불어난 가계대출은 우리 경제에 위험한 폭발물과 같다고 한다. 이걸 제거하는 작업은 신속하게, 그러면서도 조심조심 이뤄져야 한다. 타이밍과 강도, 이게 김 총재의 ‘미시적 접근’ 때 고려해야 할 변수다.

김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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