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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병욱칼럼] 국토잡아먹는 장묘문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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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얼마전 오스트리아의 빈을 여행하면서 관광 필수코스라는 음악가의 무덤에 가본 적이 있다.

베토벤.모차르트.슈베르트.하이든.브람스 등 빈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대음악가들의 무덤이 푸른 나무 사이에 아늑하게 자리잡고 있었고, 그중 많은 무덤에 꽃이 놓여 있었다. 이제는 세계적 관광명소가 된 음악가의 무덤은 독립적인 묘역이 아니다.

1백년 전 빈 시립공동묘지를 조성하면서 산재해 있던 대음악가들의 무덤을 공동묘지의 한 구역에 모아 이장한 것이다. 그 후에도 유명한 음악가들은 심사를 거쳐 이 구역에 묘소가 배정된다.

이들 유명 음악가와 국가 영웅의 묘소는 단독 매장이지만 그밖의 시민의 무덤은 모두 가족 합장으로 돼 있다. 한 무덤에 석제 또는 금속제 관을 아래 위 4층까지 매장한다. 그 이후에는 사망한지 오래된 유해의 순으로 납골해 맨 아래층 관에서부터 모시기 때문에 한 묘소에 수십기까지 매장할 수 있다고 한다.

무덤은 봉분형태가 아닌 지표면 이하의 평분이고 묘비도 개인별로 돼 있지 않고 묻힌 유해가 몇기이든 하나로 제한돼 있다. 무덤당 면적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좁지만 조경과 길이 잘 돼 있어 산책하기 좋은 공원 같았다. 가족들이 성묘할 때도 가까운 시내 묘소 한 곳만 가면 되니 얼마나 편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너무 죽은 사람의 유택(幽宅)에 국토를 낭비한다. 1998년말 현재 우리나라의 묘지는 2천만기로 3억평 이상의 땅을 차지하고 있다. 묘지 1기당 면적이 15평 이상으로 국민 1인당 주거면적의 3.5배에 이른다. 올 1월부터 개인묘지가 9평 이내로 제한됐지만 아직도 매년 여의도 면적을 넘는 1백8만평의 국토가 묘지화하고 있다.

지금 같은 단독 매장, 기껏해야 부부합장 위주의 장묘문화가 지속되면 국토 이용상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밖에 없다. 실제 문제로 몇십년 후에는 묘지로 쓸 땅조차 구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장묘문화의 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다.

다행히 3년 전부터 종교계를 비롯해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캠페인과 몇몇 저명인사의 솔선수범으로 서울시민 등 도시민의 화장 비율이 급속하게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전국적으로는 매장 위주의 장묘전통이 끈질긴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장묘문화 개혁의 방향은 화장을 권장하면서 매장의 경우에도 토지사용을 최소화하는 강력한 캠페인과 예컨대 가족 합장 같은 과감한 시책으로 나가는 게 필요하다.

이런 차원에서 최근 서울시의 승화원(화장장) 및 추모의 집(납골당) 건립계획이 입지지역의 일부 주민과 기초자치단체의 거센 반대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태는 매우 걱정스럽다. 혐오시설로 생각돼 온 화장장과 성묘철 교통유발이 불가피한 추모의 집 건립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님비현상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주민들로선 반대할 만한 여러 가지 이유가 있으리라고 본다.

다만 문제는 승화원과 추모의 집이 서울시민 전체를 위해 꼭 필요한 시설이라는 점이다. 이미 벽제 승화원만으론 화장용량이 부족해 강남의 주민들은 추가비용을 내고 성남 등 타자치단체의 시설을 이용해야 할 형편이다.

서울시가 확보한 벽제리.용미리 등의 추모의 집도 내년 3월이면 모두 차 더 이상 납골을 할 수 없게 된다. 합리적인 국토이용을 위해선 국가가 화장과 납골을 권장할 수밖에 없는데도 막상 그렇게 하려는 사람이 이용할 시설을 국가가 마련해주지 못한다면 그건 이미 국가도 아니다.

현지 주민이나 주민의 의사를 무시할 수 없는 구의회의 반대는 그렇다 하더라도 자치행정을 책임진 구청의 극한 반대에는 문제가 있다. 그 시설이 서울시민 전체를 위해 꼭 필요해 서울시내 어디에든 세워야 한다는 데 이의가 없다면 우리 지역이니 안되겠다는 것이 책임있는 행정기관이 취할 수 있는 자세인가.

서울시와 정부는 현지 주민의 반대 이유중 무조건 싫다는 주장 외에는 충분히 수용해 주민 거부감 최소화에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렇더라도 과도한 인센티브를 주는 일은 삼가야 한다. 어차피 몇년 안에 서초구 원지동 개나리골 외에도 서울시내에 추모공원을 더 세워야 하는데 첫 단추를 잘못 꿰면 두고두고 부담이 될 것이다.

지금은 우리 장묘문화의 과감한 발상전환과 그 실천에 국민적 힘과 의지를 모으는 게 급하다.

성병욱 본사고문.고려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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