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근소세 경감, 하려면 제대로 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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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가 봉급생활자들의 세금부담 경감 방안을 강구 중이라는 소식은 일단 환영할 만하다. 외환위기 이후 분배구조가 왜곡되면서 중산층.저소득층의 희생이 상대적으로 컸던 만큼 이들의 세금부담을 줄여주는 것은 정부의 당연한 책무이기도 하다.

문제는 어떻게 줄이느냐는 점이다. 정부는 봉급생활자들이 연말정산 과정에서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는 의료비.교육비 등의 공제한도를 늘려주는 방식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야당은 물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환영을 받지 못하고 있다. 소득이 많건 적건 근거만 제시하면 일정액을 공제해 주는 소득공제는 그 자체가 역진성(逆進性)이 있다.

지금도 봉급생활자의 46%가 세금을 내지 않는 상황에서 납세인구를 더욱 줄이게 된다는 점도 문제다.

이미 10여종 이상에 달하는 소득공제의 확대는 가뜩이나 복잡한 세법체계를 더욱 누더기처럼 만들 것이다.

정공법은 납세인구를 늘리되 세율을 낮춰주거나 결정된 세금 자체를 깎아주는 세액공제 확대에 있다. 이를 위해 소득수준에 따라 최고세율이 40%에 달하는 현행 근소세제를 전면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과세체계가 지나치게 복잡한데다 최고세율도 외국에 비해 높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내년 이후 공적자금 원리금 상환 등 재정 수요가 커 세수(稅收)감소 부담을 이유로 세율 인하에 반대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중산층.저소득층의 세금을 더 거둬 재정 압박을 메우려는 방식은 곤란하다. 그보다는 각종 비과세.감면 축소와 공공부문 구조조정, 재정지출 효율성 개선 등을 통해 풀어나가야 한다.

정부가 이런 근본적인 접근을 외면한 채 소득공제 확대방안만 강조할 경우 내년 선거를 의식한 선심행정이라는 비난을 자초할 수도 있다.

차제에 근소세뿐 아니라 법인세.부가세 등 현행 세제의 골격을 새로운 경제여건과 세계적인 세율 인하 바람, 신용카드 및 영수증 사용 확대에 따른 국내의 세원 확대 추세 등을 감안해 종합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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