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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시조 백일장 7월] 초대시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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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 청사포.15 - 박 권 숙

물꽃이 타오르면 서로의 상처마다

모난 뿔 부딪치며 희게 일어서는 바다

청사포 여름 방둑엔 잠 못 드는 사람 많다

맑은 속을 비워 낸 물방울이었을까

빛을 물고 사라지던 아름다운 기억들이

어둠의 깊은 뿌리로 눈부시게 빛날 때

캄캄한 소리 가득 채운 가슴마다

환한 등불 하나씩을 받쳐드는 물바위들

내마음 깎인 모들은 마애불로 떠오른다

◇ 시작노트

내마음 깊은 곳에 다녀오고 싶은 날은 청사포에 간다. 청사포는 해운대 달맞이 고개 너머 동쪽 바닷가에 있는 작고 가난한 어촌 마을이다. 같은 해운대 바다지만 눈부신 백사장을 지닌 부드러운 해운대 해수욕장과는 달리 이곳은 가파른 절벽과 암석으로 뒤덮인 해안과 거친 파도로 야성적이다. 그래서 나는 이 청사포를 좋아한다.

더 없이 황폐하고 금속적인 이 도시문명에서 상처받고 지친 사람들에게 청사포 바다의 묵중한 수도승같은 검은 물바위들이 들려주는 법문을 듣고 싶어 나는 또 청사포에 간다.

'바다는 병이고 죽음이기도 하지만 바다는 또한 회복이고 부활이기도 하다. 바다는 내 유년이고 바다는 또한 내 무덤이다' 라는 김춘수 시인의 말처럼.

◇ 약력

▶1991년 중앙시조 지상백일장 연말장원

▶1993년 제12회 중앙시조대상 신인상 수상

▶시집 『겨울묵시록』 『객토』등

▶부산경상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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