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소리샘] 미야자키 하야오가 '거장'인 이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4면

"역사 교과서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가 지금까지 해온 일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비판적인 입장. " "민족의 자긍심은 역사를 왜곡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문화교류는 계속돼야 한다. "

'이웃집 토토로' 의 홍보차 최근 내한했던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가 기자회견 전에 서면으로 밝혔던 공식 견해다. 물론 기자회견이 어색한 분위기로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한 주최측의 배려이긴 했다. 하지만 한.일 양국의 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도 악화된 시점에서 나온 발언으로선 참으로 솔직하다.

사실 그의 방한 시점을 놓고 수입사인 일신픽처스와 대원C&A는 무척 고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미야자키의 입장은 명쾌했다. 그는 "양국간에 앙금은 있겠지만 그런 것이 교류에 큰 걸림돌이 되리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고 답했다고 한다.

그는 또 신작 '센과 치이로의 행방불명' 의 후반 작업을 도와준 한국 업체인 DR무비를 방문하는 일정을 차분히 진행했다. DR무비는 일절 하청을 주지 않기로 유명한 이 고집불통 감독이 최초로 하청을 부탁한 업체다.

서울에 도착한 미야자키는 서울 구로동 DR무비를 찾아 "덕분에 '센과 치이로…' 의 개봉이 연기될 뻔한 위기를 넘겼다" 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 또 이들을 위해 '센과 치이로…' 의 필름을 준비해와 시사회를 열어주는 등 융숭한 대접을 했다.

정치와 문화는 따로 가기 힘든 게 현실이다. 그러나 때론 문화가 정치를 훌쩍 뛰어넘는 융통성을 보여주곤 한다. 그런 아량이 골치 아픈 현실을 풀어나가는 열쇠가 될 수도 있다. 미야자키는 그의 작품목록 만큼이나 '거장' 다웠다.

기선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