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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파노라마] 서울대공원 동물들 여름나기 백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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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동물원의 여름은 바깥 세상보다 더 뜨겁다. 사람들은 선풍기 바람을 쐬거나 산과 바다로 피서라도 갈 수 있으나 동물들은 '털코트' 를 입은 채 마냥 자기집을 지켜야 한다.

27일 경기도 과천시 서울대공원 동물원. 땡볕 더위에 지친 동물들이 낮잠을 자는 동안 물 뿌려주랴, 신선한 과일 넣어주랴 사육사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유난스레 더위를 많이 타는 흰곰은 가끔씩 고개를 양쪽으로 흔들어대다 돌출 행동을 하곤 한다. '더워 죽겠다' 는 무언의 항변이지만 관람객들은 "야, 곰이 테크노댄스 춘다!" 며 신기해 한다.

한시간이 넘게 고개를 흔들고 있을 땐 측은한 마음에 사육사가 얼음 덩어리를 풀에 넣어준다. 그러면 흰곰은 풀 속으로 들어가 얼음덩어리를 꼭 껴안은 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사육사 임정균씨는 "얼음을 넣어주면 더할나위 없이 좋아하지만 한덩어리에 2만원이나 해 자주 넣어주지 못한다" 고 귀띔했다.

코끼리도 육중한 덩치만큼이나 더위를 많이 탄다. 십수년 터줏대감인 코끼리 부부 칸토와 키마는 물 웅덩이에 몸을 담근 채 밖으로 나올 생각을 안한다.

가끔씩 밖으로 나와 부채질 하듯 두귀를 펄럭이며 열을 발산하거나 사육사가 등에 흙을 뿌려 직사광선을 피하도록 하는 게 고작이다. 대형호스를 이용해 하루 여섯번씩 등에 물을 뿌려주어야 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반면 오랑우탄.침팬지.고릴라가 사는 유인원관은 제철을 만난 듯 활기를 띤다. 대부분 아프리카 열대지방에서 살다 온 이들은 지난 겨울 담요를 뒤집어 쓴 채 여름이 오기 만을 기다렸다. 그래서 이 동물들은 물 속에 발을 담근 채 음료수를 마시거나 수박.토마토 등 하루 6천원어치의 과일을 먹어치우며 여름을 즐기고 있다.

사육사 장영진씨는 "기분이 좋을 때는 관람객들에게 물을 뿌리는 장난을 친다" 고 말했다.

'밀림의 왕자' 인 사자들과 백두산 호랑이 '낭림' 은 더위 때문에 이미지를 구겼다. 늠름함은 온데간데 없고 만사가 귀찮다는 듯 하루종일 축 늘어진 배를 깔고 엎드려 파리만 쫓고 있다.

가끔씩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줄기에 몸을 맡기지만 영 시원찮다. 그러다 선선한 밤이 돼서야 큰소리를 지르며 낮동안에 쌓인 더위 스트레스를 날려보낸다.

섭씨 25도 이상에서 최상의 컨디션을 보이는 파충류도 제철을 만난 듯 몸을 잠시도 쉬지 않고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돌아다닌다.

서울대공원 김기근 동물원장은 "동물들에게는 더위보다는 추위가 더 혹독하기 때문에 여름나기는 수월한 편" 이라며 "추운 지방에서 온 동물이라 해도 1년을 넘기면 더위에 금방 적응한다" 고 말했다.

박지영 기자

사진=장문기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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