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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웬 탄핵론인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한나라당 일각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탄핵(彈劾)소추 문제를 거론함에 따라 험악해진 정국 상황이 더욱 걱정스러운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 탄핵은 인도네시아 와히드 대통령을 밀어낸 경우처럼 치명적인 국정 파탄 때 입법부가 꺼내는 권력 퇴출의 극단적 수단이다. 민주당의 거친 반발이 이어지면서 가파른 평행선을 그어온 여야 대치정국이 이젠 벼랑에 다다른 느낌이다.

한나라당 이재오(李在五)총무가 탄핵사유로 내세운 국가채무 급증과 실업자 양산, 남북관계의 정략적 이용과 세무사찰을 빙자한 언론탄압 문제는 새로운 쟁점이 아니다.

현 정권의 인기가 바닥에서 허덕이고 있고 국민적 공감대가 있는 사안이라 해도 탄핵이라는 최악의 카드로 해법을 찾는 것은 지나치다. 탄핵은 헌정 중단이라는 불행한 상황을 감안한 극약요법이며 정치적 혼란을 감수해야 한다.

경제가 더 나빠질 수 있으며 남북관계가 후퇴하고, 돌이킬 수 없는 국론 분열이 올 수 있다. 무엇보다 탄핵 카드에 깔린 정략적 접근의 흔적이 엿보인다.

언론 세무조사 뒤 정치권에 사정(司正)바람이 불 것이라는 야당의 의심은 이해할 만하지만 이를 덮기 위해 탄핵이라는 충격적인 맞불을 지피려 한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 또 최다의석을 차지한 야당은 정국이 여기까지 오도록 무엇을 했는지도 반성할 일이다.

민주당으로선 탄핵 거론 자체가 기분 나쁠 것이다. 그렇다고 '이회창 총재의 대권욕, 발칙한 대국민 협박' '벌건 대낮의 쿠데타 발상' 이라는 식의 감정적 대응만으론 곤란하다. 한나라당이 물고 늘어지는 국정 혼선의 문제점을 차분하게 따져보고 대책을 마련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정치권이 이런 공방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먼저 이회창 총재가 나서야 한다. 李총무의 사견이라는 한나라당의 주장은 여론 탐색용이라고 본다. 개혁의 목적.명분이 좋더라도 법치주의 틀에서 벗어나면 안된다는 李총재의 지론처럼, 정권의 실정(失政)을 깨우치는 방식이 헌정 위기의 그림자가 깔린 탄핵에 의존하려 해선 안될 것이다. 탄핵론은 거둬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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