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위기 딛고 선 기업들 <10> 메디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11면

서울 대치동의 메디슨 연구소에서 한 연구원이 3차원(3D) 초음파 진단기기를 테스트하고 있다. 2002년 부도 후에도 연구개발 인력이 떠나지 않고 제품 개발에 매진했다. [김도훈 인턴기자]

원조 벤처·이민화·초음파진단기….‘메디슨’ 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이다. 1990년대 후반 벤처 바람이 불던 시절 우리나라 대표적 벤처기업으로 떠올랐다가 급전직하하는 설움을 맛봤다. 2002년 1월 부도가 났고, 같은 해 4월 코스피 시장서 퇴출됐다. 1998년 세계 처음 3차원(3D) 초음파진단기를 개발해 관심을 모았지만 무리한 투자에 시황 악화가 겹쳐 내리막길을 걸었다.

그러나 메디슨은 일반에 잊힌 수년 동안 살아 있었다. 아니 이제 부활하는 중이다. 기술력을 앞세워 전 세계 초음파 진단장비 시장점유율을 2002년 1%에서 2008년 8%로 끌어올리면서 2000억원 매출 고지를 회복했다. 영업이익도 2년 연속 300억원을 웃돌았다. 특히 3D 초음파 기기 시장에서는 미국 GE와 어깨를 나란히한다. 메디슨의 손원길 부회장은 “2012년 매출 5억 달러에 영업이익률 30%, 세계 초음파 진단장비 시장 3위 달성을 목표로 삼았다. 턴어라운드(위기 극복)를 넘어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컴퍼니로 새롭게 도약 중”이라고 말했다.

◆위기는 갑작스레…=2002년 메디슨의 부도에 대해 ‘무분별한 투자와 문어발식 경영’이란 지적이 많았다. 2000년 절정에 달한 우리나라 벤처투자 붐 이후 코스피와 코스닥 시장의 거품이 급격히 빠지면서 유동성 위기로 내몰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 패인은 본업인 초음파 의료기기 분야의 부진이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기술인력과 영업망 등 핵심 역량을 가다듬었다면 부도라는 최악의 상황에 이르진 않았을 것이라는 게 현재 경영진의 분석이다. 초음파 의료기기 경영의 부실을 털어내려고 벤처붐이라는 조류에 편승해 당시 많은 기업이 그랬듯이 잘못된 길을 걸었다. 사업성 분석을 면밀하게 하지 않고 튀는 아이디어에 막대한 돈을 퍼붓는 우를 범한 것이다. 결국 무분별한 문어발식 투자로 흘렀고 재무구조를 악화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투자자금을 단기차입으로 조달하려다 보니 경영상태를 좋게 포장하기에 바빠 수익성을 도외시한 밀어내기식 판매가 횡행했다. 결국 부도와 함께 증시 상장 리스트에서 빠지고 말았다.

◆법정관리와 새 주인=부도 직후 메디슨 직원들에게 스카우트 제의가 많이 들어왔다. 당시 초음파진단기는 기술이 어렵고 판로 개척이 힘들어 연구개발은 물론 생산과 마케팅 인력이 모두 부족했다. 아울러 당시 외국계 글로벌 경쟁사는 한국 내 초음파 연구소 설립을 추진하는 등 한국 의료기기 시장을 적극 확대해 나가는 중이었다. 또한 의료기기 업계가 아니어도 메디슨의 잘 훈련된 인력은 기술 중심의 정보기술(IT) 회사들의 영입 1순위였다.

메디슨의 400여 임직원은 아직도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다. “부도 이후 경영을 좌지우지하는 법원이 인원과 급여를 팍팍 줄이는 쪽으로 회생을 진행했다면 지금의 메디슨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부도 후에도 연구개발(R&D) 인력은 회사를 쉽사리 떠나지 않았다. 오히려 부도 전보다 관련 인원이 50% 이상 늘었다. 연구비도 2002년 97억원에서 지난해에 242억원으로 증가일로였다. 이러한 노력으로 신제품이 잇따라 출시됐다. 기존의 3D 초음파 진단장비에 디지털 기술을 접목해 잡음이나 신호 왜곡 등을 없앤 제품이 부도 맞은 이듬해인 2003년 11월에 출시됐다. 2006년에 마침내 법정관리를 졸업했다. 2005년부터 메디슨 지분을 인수하기 시작한 투자전문회사 칸서스파트너스가 지난해 41%로 최대주주가 됐다.

메디슨은 2004년 미국 시장에서 94%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특히 미국 산부인과 시장에서는 전체 2위다. 이 같은 해외 딜러망이 큰 강점이다. 법정관리 중에도 해외 딜러망은 공들여 관리했다. 매출의 80%가 수출에서 나오는 업체로선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는 적잖은 시련이었다. 의사결정 구조를 좀 더 효율적으로 바꿔야 할 필요가 생겼다. 원화 가치가 급락하는데 의사결정이 신속하지 못해 유동성 위기를 겪은 것이다. 결국 지난해 4월 칸서스파트너스의 공동대표인 손원길 부회장이 대표이사로 경영에 참여했다. 거듭된 혁신이 없으면 과거의 어려움에 언제든지 빠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는 취임 후 1년간 조직 정비와 해외망 관리 등 경영혁신과 임직원 소통에 주력했다.

심재우 기자

손원길 부회장 “내시경·MRI로 사업 확장 … 내년 재상장 추진”
중소 의료기기 업체 위해 수출 지원 사업 나서기도

손원길(57·사진) 메디슨 대표가 부회장이라는 직함을 쓰는 데 대한 설명이 재미있다. “고객·직원·주주를 회장으로 모시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취임 후 1년을 사내 소통과 직원 기 살리기에 힘썼다. 손 부회장은 “매일 오전 7시30분부터 본부장 회의를 열어 옆 사람이 무얼 하는지, 본부 간 의사소통은 잘 되고 있는지 점검했다. 이젠 사내 언어가 어느 정도 통일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체육대회를 열어 본인이 몸소 선수로 뛰었다. 해외 현지 법인과 대리점의 외국인 직원을 한국으로 초청해 선상 파티를 열어 전 세계 메디슨 직원의 동질감을 키웠다. 지금도 오후 10시부터 한 시간 동안 전 세계 12개 법인장과 화상회의를 한다. ‘최고의 복지는 교육’이라는 지론대로 메디슨만의 MBA(경영학석사) 과정을 개설했다.

의료기기 부품회사와 상생하는 것도 큰 관심사다. 기술력은 있지만 수출에 어려움을 겪는 국내 의료기기 업체들을 위해 메디슨은 지난해 메디슨헬스케어라는 자회사를 세웠다. 수십억원을 투자해 서울 대치동 빌딩 1층에 개관한 에츠하임 센터는 중소 의료기기 업체들이 수출상담 장소로 활용할 수 있도록 꾸몄다.

손 부회장은 초음파 진단기기 외에 X선·내시경·MRI(자기공명영상촬영장치) 등 연관 의료기기로 사업을 확장해 메디슨을 글로벌 의료기기 종합회사로 키운다는 목표다. 이를 위해 내년 5월께 상장 폐지 9년 만에 재상장을 추진한다. 이미 그 과정을 밟기 시작했다.

그는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헬스케어 사업은 성장할 수밖에 없는 분야”라고 말했다. 이 방면에서 메디슨은 잠재력이 충분한 만큼 1조원 정도는 투자할 수 있는 회사가 새로운 주인이 됐으면 좋겠다는 것이 그의 소망이다. 한국전력에서 20년간 채권·주식 거래 등 국제금융 업무를 한 그는 우리금융그룹 임원으로 일하다 사모펀드인 칸서스파트너스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그는 “제조·유통업을 잘 모르지만 수십 년간 국제 투자업무를 하면서 기본에 충실하면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심재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