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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 작은 경고도 크게 듣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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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반면교사(反面敎師)’라는 말이 있다. 다른 사람이나 사물의 부정적인 모습에서 가르침을 얻는다는 뜻이다. 1960년대 중국의 문화대혁명 때 마오쩌둥이 처음 사용했다. 발생 80여 일째인 도요타 리콜 사태가 꼭 그렇다. 국내 기업들은 도요타 사태를 계기로 품질 관리를 강화하고, 위기대응 체제를 정비하고 있다. 산업현장에선 ‘도요타 반면교사 삼기’ 열풍이 불었다.

도요타의 가장 큰 잘못은 리콜 자체보다 고객의 안전을 소홀히 여긴다는 인상을 남긴 것이었다. 품질의 위기가 신뢰의 위기로, 신뢰의 위기가 경영의 위기로 확산됐다. 초일류 기업도 고객과의 신뢰가 무너지면 한순간에 흔들리는 것을 지켜본 국내 기업들은 품질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삼성은 ‘절대품질론’을 내세웠다. 휴대전화의 경우 배터리 폭발 가능성, 전자파, 유해물질 함유 여부 등 3개 항목을 절대품질 대상으로 삼아 무결점을 지향하기로 했다. 구본무 LG 회장은 3월초 임원세미나에서 “품질은 어떤 순간에도 타협할 수 없는 고객과의 절대적인 약속”이라고 강조했다.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은 2월 초 경영전략회의에서 “품질을 능가하는 경영목표는 없다”고 말했다. 신세계그룹 이마트는 육류·생선·과일 등의 신선식품 품질혁신에 나서 품질 미달 상품을 전량회수해 폐기했다. 현대백화점은 고객이 불만을 제기하면 현장에서 바로 해결하고 나중에 보고하는 ‘선조치 후보고’ 제도를 도입했다. 롯데그룹은 제조·판매되는 먹을거리 정보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올 세이프’ 시스템을 구축했다.

기업들, 글로벌 사업장도 재점검

2월 하순 현대차의 신형 YF쏘나타 리콜과 LG전자의 구형 드럼세탁기 105만여 대 리콜 등 기업들의 발 빠른 리콜 전략은 도요타 사태와 무관치 않다. LG 관계자는 “수백억원이 들어가는 드럼세탁기 리콜을 세탁기에서 어린이가 질식사한 사고 4일 만에 결정한 것은 도요타 사태 이후 달라진 점”이라고 말했다.

도요타 사태는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사업장을 재점검하는 계기도 됐다. 해외 사업장의 부품 불량이 사태의 진원지였기 때문이었다. 현대·기아차는 해외 협력업체들에 점검팀을 파견해 특별 실사를 벌였다. 삼성은 전 세계 사업장의 품질관리 실태를 대대적으로 점검했다.

대기업들은 협력업체와의 관계를 다시 짚어보고 있다. ‘하청업체 쥐어짜기’가 결국엔 품질관리에 ‘독’이 된다는 사실이 도요타 사태에서 드러났기 때문이다. 비단 대기업만 자극을 받은 건 아니다. 경남의 선박엔진 부품 생산기업인 화영은 2월 말 14명의 직원으로 태스크포스를 꾸렸다. 쇼바와 연료펌프 생산공정을 개선하기 위해서였다.

대한상공회의소가 13일 발표한 기업인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제조업체 10곳 중 7곳은 도요타 사태가 경영에 영향을 줬다고 대답했다. 20.6%는 ‘회사 경영 방침에 눈에 띌 만한 변화가 있었다’고 답했고, 52.4%는 ‘품질과 안전 문제에 대한 인식이 강화됐다’고 밝혔다. 경영방침이 어떻게 달라졌느냐는 질문에는 ‘완성품의 품질관리 강화’(52.6%)라는 대답이 가장 많았고, ‘부품·소재 협력업체 관리 강화’(27.8%), ‘문제 발생 시 대응체계 확립’(15.7%) 등의 응답도 적지 않았다.

이상렬·이수기 기자


도요타 관련 주요 발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 지금이 진짜 위기다. 글로벌 일류기업들이 무너지고 있다. 삼성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다시 시작해야 한다.”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 도요타 사태 원인을 분석해 현대·기아차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게 예방 대책을 세우라.”

구본무 LG 회장
“ 품질은 어떤 순간에도 타협할 수 없는 고객과의 절대적인 약속이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 도요타 사태에서 보듯 방심하면 언제든지 침몰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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