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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80년대 말 일본과 닮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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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현재 한국은 1980년대 후반 일본 경제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환경에 직면해 있다.”

일본 노무라증권의 진단이다. 12일 노무라의 권영선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보고서를 통해 “한국은행이 정부·주요국과의 공조에 지나치게 집중할 경우 과거 일본은행처럼 실기할 수 있고 경기의 진폭이 크게 확대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현재 한국이 처한 경제·정책 환경과 중앙은행의 사정이 80년대 후반 일본과 닳은 꼴이라고 지적했다. 자칫하면 금리인상 타이밍을 잡는 데 실패해 거품을 키운 일본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얘기다.

85년 플라자 합의 후 일본의 가장 큰 걱정은 엔화 가치가 너무 오르는 것이었다. ‘엔고 불황’을 막기 위해 일은은 86~87년 재할인금리를 2.5%포인트 낮췄다. 일본 경제는 외견상으론 빠르게 회복했다. 하지만 이때 풀린 돈이 거품을 만들었고, 일은이 뒤늦게 금리를 급격히 올리는 바람에 장기불황의 단초를 제공했다.

당시엔 유가가 안정되면서 86~88년 소비자물가 오름폭이 연 평균 0.5%로 미미했다. 일은이 금리인상의 명분을 찾지 못한 이유다. 또 통화정책에서도 국제공조와 환율안정이 강조됐다. 당시 일은 총재는 대장성 차관 출신의 스미타 사토시(澄田智). ‘국제파’였던 그는 국제공조를 중시했다.

현재의 한국 상황도 이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대 초반에 머물러 있다. 또 이성태 전 총재가 국내파라면, 신임 김중수 총재는 국제파를 연상시킨다는 지적이다.

권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의 은행과 기업이 구조조정을 거친 상태고, 주택담보대출도 당시 일본에 비해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어 일본식 거품은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시장에 저금리가 상당 기간 이어질 것이란 인식이 퍼질 경우 새로운 형태의 거품이 생길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갈 곳 잃은 돈이 회사채로 몰려 ‘채권 버블’이 일어나거나, 가계·기업의 부채가 더 늘어 금리 인상의 충격이 커지는 경우가 그렇다는 설명이다. 그는 “일본의 교훈은 물가상승률이 낮더라도 이를 위협하는 요인이 커질 때는 신속히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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