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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수의 세상읽기] 미·중 환율전쟁의 종착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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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현재로선 중국이 앞으로 1년간 위안화를 3~5% 절상하는 선에서 미국의 절상 압력을 무마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문제는 이 정도로 미국이 만족할 수 있을 것이냐다. 특히 미 의회가 위안화의 불만을 제기할 가능성이 크다. 미 의회에는 중국이 위안화를 적어도 25~40%는 일시에 절상해야 한다는 의원들이 많다. 이들은 위안화 절상이 미흡할 경우 중국산 수입품에 대해 고율의 관세 부과를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고 중국이 미국의 압력에 못 이겨 위안화를 일시에 대폭 절상하거나 미국의 고율 관세를 고분고분 받아들일 것 같지는 않다. 중국은 환율을 더 내리지도 않을 것이며, 미국이 징벌적인 관세를 물리면 즉각 미국 상품에 대해 보복관세를 부과할 것이다. 세계경제의 양대 강국이 전면적인 무역전쟁에 돌입하는 것이다.


여기다 중국이 보유한 미국 국채를 내다 팔기라도 하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을 수도 있다. 폴 크루그먼은 중국이 미국 국채를 내다 팔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했지만, 막상 양국이 자존심이 걸린 치킨게임을 벌이다 보면 그러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중국도 막대한 자산가치의 손실을 보겠지만 미국도 엄청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양국의 무역전쟁은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가까스로 회복 중인 세계경제에도 치명상을 입힐 것이다. 미·중 간의 환율 갈등을 전 세계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보는 이유다.

어쩌다 세계경제를 좌우하는 두 나라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발단은 두 나라 모두 국내 정치적 요인이 큰 몫을 차지한다. 미국이 중국의 위안화 환율을 문제 삼기 시작한 것은 지난 2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5년 동안 수출을 두 배로 늘려 일자리 200만 개를 만들겠다”며 “(중국의) 환율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선언하면서부터다. 여기에는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오바마 대통령과 미 정치권의 초조함이 배어 있다. 미국경제가 금융위기에서 회복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전년보다 두 배 가까이 뛰어오른 실업률은 낮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말 10%를 넘어선 실업률(연간 9.3%)을 잡지 않고는 중간선거는 물 건너갈 판이다. 그러던 차에 일자리 창출의 걸림돌로 중국의 환율을 지목한 것이다. 중국이 인위적으로 위안화 가치를 낮게 유지하는 바람에 미국의 수출경쟁력을 떨어뜨리고 결국 미국인의 일자리를 빼앗아간다는 논리다.


중국이 대미 수출에서 거두고 있는 막대한 무역흑자만을 보면 그럴듯한 얘기다. 그러나 중국의 대미 무역흑자가 오로지 저평가된 위안화 때문이라는 지적은 지나친 과장이다. 중국의 수출경쟁력은 기본적으로 막대한 저임금 노동력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중국의 수출산업과 미국의 수출산업이 경쟁관계에 있다는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 실은 중국이 위안화를 절상해도 미국의 무역적자가 줄어들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정설이다. 위안화가 절상되면 중국 제품이 다른 나라 제품의 수입으로 대체될 뿐 무역적자가 줄어들지 않는다는 얘기다. 위안화가 절상되면 미국인의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란 가정도 허구에 가깝다. 결국 위안화 절상 요구는 미국의 국내 정치적 필요에서 나왔을 공산이 크다.

중국이 위안화 환율을 고정하고 있는 것도 다분히 중국 내부의 정치적 필요성이 크게 작용한다. 역시 일자리 때문이다. 중국은 금융위기 이후 적극적인 재정지출로 내수를 부추겨 왔다. 고도성장의 관성력이 떨어질 경우 남아도는 노동력을 흡수할 방법이 없다. 농민공의 대량 실직은 사회 불안의 불씨가 될 소지가 크다. 그래서 중국 정부는 연간 8% 성장률을 유지하기 위해 기를 쓰고 있다. 내수과열과 안정성장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는 중국 입장에서 환율의 변동성이 커지는 게 달가울 리가 없다. 중국이 위안화를 절상해야 한다는 내부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섣불리 결심하지 못하는 이유다. 미국의 압력에 떼밀려 위안화를 절상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중국 정부로서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미·중 간의 환율 갈등은 정치적 이유로 비롯됐고, 따라서 정치적으로 풀 수밖에 없다. 최근 양국 정부 당국자 간의 물밑 협상설은 이미 그런 과정에 들어섰음을 시사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양국의 정치 지도자들이 국내 정치적 이유로 보호무역주의로 기울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보호주의에서 비롯된 무역 마찰은 두 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재앙을 부른다.

김종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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