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한국바스프=외국사+대기업+중견기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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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국내에서 가장 많은 기업을 비교적 짧은 기간 내 합병한 회사가 이처럼 높은 시너지(통합)효과를 본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

최근 컨설팅 전문업체인 윌리엄 머서는 독일계 종합화학회사인 한국바스프(http://www.basf-korea.co.kr)를 이같이 평가했다.

한국바스프는 1998년 ▶바스프코리아▶한화바스프▶효성바스프▶대상 라이신 사업▶동성화학 폴리올 사업을 인수.합병(M&A)했고, 지난달 29일 SK에버텍의 울산공장을 인수함으로써 '한 지붕 여섯 살림' 을 하고 있다.

외국기업.대기업.중견기업의 기업문화가 공존하고, 업종(플라스틱.폴리우레탄.생화학.무역 등)과 지역(서울.울산.여수.군산)이 제각각이다. 노조도 민주노총 계열이 한개, 한국노총 계열이 두개나 된다.

그러나 이 회사는 단일기업과 같은 분위기를 자랑한다. 지난 5월부터 두달 넘게 '조용한 임금협상' 을 벌여 곧 노사합의도 이뤄낼 전망이다. 최근 통합에 따른 갈등으로 시끄러운 다른 합병업체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임금협상을 주도해온 민주노총 계열의 한 노조간부는 "노사 어느 쪽도 향후 4년간 4억달러를 투자하는 데 걸림돌이 돼선 안된다고 의견이 일치할 정도로 협상이 원만하게 이뤄져 이달 말 마무리할 예정" 이라며 "이는 회사가 투명해 노사가 신뢰할 수 있는 바탕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 이라고 말했다.

독일 본사는 현재 여수공장 등의 연간 생산규모를 최고 60% 정도 확장하고, 일부는 신규건설도 추진 중이다.

◇ 회사가 신뢰를 얻은 게 비결=맹윤호 인사.노무담당 상무는 "합병 초기엔 다소 중복되고 비효율적이더라도 직원의 불안감을 없애는 데 역점을 뒀다" 고 말했다. 돈이 들어도 조직을 먼저 안정시키려고 했다.

중복된 인원을 정리할 땐 명예퇴직금으로 3년치 월급을 얹어줘 불만을 없앴다. 또 최고 1.5배나 차이가 나는 직원들의 임금격차도 순조롭게 조정해 대부분의 월급을 사실상 상향조정했다는 게 회사측 설명이다. 정년.퇴직금 제도는 전직원이 모여 90% 이상 찬성을 얻어 시행했다.

그러나 신뢰가 쉽게 쌓이지는 않았다. 합병 첫해 테일러넬슨 소프레스 컨설팅회사에 의뢰해 직원의식을 조사한 결과 직원들은 ▶한국 실정을 무시한 영업강요 ▶규정에 따른 까다로운 업무처리 ▶독일 경영자의 한국 노동자 이해 부족 등의 불만을 쏟아냈다. 99년부터는 ▶성과급에 따른 급여 차이 ▶사내 개인주의 확산 등의 불만도 커졌다.

회사측은 이에 따라 울산.군산.여수 등을 순회하며 회사측의 개선노력을 전직원에게 설명했다. 또 불만 항목마다 매년 개선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실천해 '직원 불만 비율' 을 한자릿수로 끌어내리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또 현지법인이 연매출 1조원 이상이면 현지인이 최고경영자가 되는 경우가 드물지만 유종렬 회장을 대표이사로 영입, 독일 본사와 한국 노동자의 완충역할을 하도록 했다.

윌리엄 머서의 김명주 이사는 "면접조사 때 대부분의 직원이 '최고 화학기업' 이라는 자부심을 보이면서 만족도가 높게 나타나는 등 통합조직이 안정된 것으로 평가됐다" 고 말했다.

◇ 시너지 효과도 괄목할 만해=화학업종이 침체해 감산바람이 부는데도 이 회사는 합병 뒤 3년간 매출이 증가세를 보이며 순익을 냈다.

회사측은 원료구매가 제품원가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업종의 특성상 통합에 따른 대량구매 효과가 나타난 것으로 분석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말 직원들에게 평균 3백% 안팎의 성과급도 줬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단기적인 통합 성공에 안주하기보다 장기적으로 직무.성과급 등 불만 소지가 여전한 서구식 제도의 정착에 역점을 둬야 할 것" 이라고 말했다.

김시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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