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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로 간 봉준호의 ‘마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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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호 34면

2010년 벽두에 샹젤리제 거리를 비롯한 파리 주요 지역에 봉준호 감독의 ‘마더’의 개봉을 알리는 대형 포스터가 일제히 붙었다. 파리에서 김혜자씨의 낯익은 모습을 만나는 것이 신선하고 새로웠다. 올해 들어서만 한국영화 4편이 연이어 개봉관에 올려지고 있다. 1월에는 파리시에서 후원하는 포럼데이마주의 영화축제에서 한국영화 특집을 주관하며, 한류 세미나까지 개최했다. 며칠 전 프랑스 최장수 문화부 장관을 지낸 자크 랑 하원의원은 전수일 감독의 ‘히말라야’에 대한 칭찬을 그치질 않아 정작 영화를 보지 못한 필자를 당황스럽게 했다.

사실 한국 문화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높은 관심은 영화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최근 2~3년 사이 주프랑스 한국문화원의 한국어 강좌에는 신청 첫날부터 등록 희망자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강의실이 부족해 수십 명을 돌려보내야 할 정도다. 한 리셉션에서 마주친 외교관은 한국어 등록을 위해 오전 7시부터 줄을 섰던 기억을 얘기하며 한국어를 더 배우고 싶지만, 새벽에 줄을 서는 게 자신 없어 엄두를 못 내고 있다고 했다. 2000년대 초 30~40개에 머물던 한식당 수도 급격히 증가했다. 현재 100여 개 식당이 성업 중이다. 이들 중에는 한인 밀집지역에서 벗어나 현지인을 주 고객으로 하는 곳들도 많다.

프랑스의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은 일본·중국·베트남 등 아시아의 한류와 질적인 차이가 있다. 아시아가 ‘스타 중심의 뜨거운 열기’라면 유럽은 ‘예술가와 작품에 대한 차분하지만 지속적인 관심’이라고 할 수 있다. 봉준호·박찬욱·김지운·김기덕 등과 같은 영화감독이나 소설가 황석영은 꾸준한 매니어층을 형성하고 있다. 아직 할리우드 영화와 같은 대규모 흥행몰이를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한국 감독들의 작가정신에 매료돼 다음 작품을 기대하는 매니어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 음식을 찾고, 한국 문화 전반에 대한 관심을 넓혀가며 한류의 근원을 만들고 있다. 2009년 하반기부터 파리를 비롯한 보르도·낭트·루앙 등 주요 도시 20여 개 중·고등학교에서 ‘한국어·한국문화’를 정규수업 내용에 넣은 것은 우연히 된 일이 아닌 것이다.

5월 말, 파리와 제2의 도시 리옹에선 한식 행사도 개최된다. 요리연구가 임지호씨가 프랑스의 유명 요리사와 ‘세계 요리’로서의 한식을 선보일 예정이다. 6월 초 알사스 스트라스부르에서 개최되는 현대음악축제 주제도 한국이다. 전자음악과 살풀이, 사물과 클래식 현대음악, 한국 힙합그룹 공연 등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모습이 소개된다. 한류 축제 한마당은 프랑스 정·관계, 경제계, 스포츠, 문화계 등 각 분야 지도급 인사들을 한국과 자연스럽게 연결시켜주는 튼튼한 고리가 된다.

프랑스의 한류는 스타의 얼굴을 보기 위해 몰려드는 소란함보다 한국 예술인들의 작가정신을 통해 한국 문화의 수준을 가늠해본 뒤, ‘문화 한국’ 브랜드를 다른 나라에 확산시켜주는 토양이 되고 있다. 한국의 문화가 에펠탑이나 만리장성과 같은 눈에 띄는 문화적 상징은 아니더라도, 투철한 작가정신과 뛰어난 작품성으로 유럽인과 세계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음을 파리는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며칠 전, 자리를 같이한 문명 비평가 기 소르망은 “한국은 우수한 전통문화와 현대문화를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세계 속에 문화 한국의 인식을 심어주지 못해, 국가경쟁력이 평가절하되고 있다”며 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프랑스 내에는 3000여 개의 크고 작은 극장 무대와 700여 개에 이르는 각종 문화축제가 있다. 세계 각국 문화계의 새로운 시도와 창작물이 끊임없이 유입되는 통로다. 물론 프랑스 무대에서 호평 받고, 세계적 명성을 얻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 문화예술인들이 프랑스 무대에 새로운 작품으로 끊임없이 도전해, 유럽과 세계로 뻗어나가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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