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축구] 윤상철, 유소년 지도자 됐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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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제 기록이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는 게 안타깝습니다. 김현석(울산.99골)이 빨리 기록을 깨줬으면 좋겠습니다. 무슨 종목이든지 기록은 자꾸 깨져야 발전하는 것 아닙니까□"

프로축구 통산 득점 1위(1백1골) 자리를 지키고 있는 윤상철(36)씨.

검은 피부에 날카로운 눈빛, 먹이를 발견한 맹수처럼 순식간에 결정을 지어버리는 골 감각은 축구팬들의 기억에 오래 남아있다. 3년간 종적이 묘연했던 그는 지금 모자를 눌러쓰고 축구 꿈나무들과 씨름하는 유소년 지도자(차범근 축구 교실 코치)로 변신해 있다.

건국대를 졸업하고 1988년 럭키금성(현재 안양 LG)에 입단한 윤씨는 그해 네 골을 넣은 것을 시작으로 97년까지 10년간 3백 경기에 출장, 1백1골을 기록했다. 94년에는 24골로 득점왕에 오르면서 한 시즌 최다골 신기록을 세웠다.

97년 국내 첫 1백골 고지에 올라선 윤씨는 내심 1백30골 정도를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그해 말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의 여파로 각 구단이 '몸집 줄이기' 를 시작했고 고액 연봉자인 윤씨는 희생양이 됐다. 은퇴경기도 못 치르고 쫓겨나듯 팀을 떠났다.

윤씨는 미련없이 짐을 싸 호주로 날아갔다. 그곳 프로리그에서 두 시즌을 뛰었다. 그리고 '새로운 길' 을 찾았다. 바로 유소년 축구였다. 호주 프로리그 소속 유소년팀에서 지도자 수업을 받으며 코치로 1년을 보냈다. '즐겁게 공을 차며 기본기를 익히는' 시스템에서 자란 아이들이 17세가 되면 늠름한 선수로 성장해 유럽으로 진출하는 것을 봤다.

유소년 축구에 투신하겠다는 뜻을 품고 올 3월 귀국한 윤씨는 차범근씨로부터 도와달라는 제의를 받았다. 윤씨는 서울 한강시민공원 이촌지구에 있는 축구교실에서 3백20명의 '제자' 들을 가르친다. 훈련이라기보다는 '공을 갖고 논다' 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분위기는 자유스럽고 재미있다. 아이들은 수업이 끝나도 저희들끼리 공을 차느라 해지는 줄 모른다. 이 중에는 아들 장호(8)군도 있다.

윤씨는 "요즘 프로축구가 빠르고 조직적이지만 예전에 비해 선수들의 개성이 부족하고 너무 단조로운 것 같다" 며 "선수들이 자신만의 장기를 개발해야 팬들도 선수를 보기 위해 축구장을 찾을 것" 이라고 지적했다.

정영재 기자

사진=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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