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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돈 줬다는 걸 무조건 기정사실화한 이상한 결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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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돈 줬다” 진술만 6번 바뀌어=곽 전 사장은 수사 초기 “한 전 총리에게 10만 달러를 줬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후 “검사님이 눈을 부릅떠 무서워서 그렇게 진술했다”고 말을 바꿨다. 지난해 11월 구속된 그는 다시 “3만 달러를 줬다”고 말했다. 곽 전 사장은 이 진술에 대해서도 열흘 뒤 “다른 범죄에 대해 선처를 받고 싶어서 거짓말을 했다”고 진술을 뒤집었다. 재판장인 김형두 부장판사는 “검찰은 이 같은 과정에 대한 기록을 제출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후 곽 전 사장은 “5만 달러를 줬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이를 토대로 한 전 총리를 기소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곽 전 사장의 진술에 일관성이 없어 신빙성이 의심스럽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총리 공관 현장 검증을 바탕으로 2006년 12월 당시 오찬장에서 한 전 총리가 돈을 받지 않은 것으로 봤다. ▶바깥에서도 오찬장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개방 구조 ▶촘촘한 경호 ▶평소 오찬장 퇴장 순서는 총리가 가장 앞선다는 점 등이 판단 근거가 됐다. 재판부는 “두 사람의 관계가 인사 청탁을 할 정도로 스스럼 없는 사이라면 다른 방법으로도 돈을 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한 전 총리에게 돈을 줬다는 것을 무조건 기정사실화해서 나온 이상한 결과”라고 했다.

◆“곽영욱은 궁박한 상태였다”=재판부는 검찰의 심야 조사에 대해 문제를 지적했다. 김 부장판사는 “새벽에 권오성 부장검사가 ‘건강에 유의하라’는 등 의례적인 면담을 했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새벽 2시까지 이어진 조사 때문에 곽 전 사장은 생사의 기로에 서는 극단적인 두려움을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곽 전 사장은 협심증·혈관질환·당뇨병 등으로 치료를 받고 있다. 김 부장판사는 “곽 전 사장이 뇌물 공여 진술을 시작한 날에는 조사가 일찍 끝난 점도 의구심을 더한다”고 지적했다.

뇌물을 줬다고 진술하는 대가로 검찰이 곽 전 사장의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를 눈감아 줬다는 의혹도 인정했다. 재판부는 “곽 전 사장이 기소 위기라는 궁박한 처지를 벗어나기 위해 검사에게 뇌물 공여에 대해 협조적인 진술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 부장판사는 “뇌물 수수 혐의에 대한 합리적 의심을 거둘 만한 정도의 신빙성이 없는 상태”라고 판단했다. 또 ▶한 전 총리가 골프채를 선물받았다는 의혹 ▶곽 전 사장 소유의 제주도 리조트를 이용한 점 등에 대해선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최선욱·이현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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