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한명숙 무죄 걱정됐나” 검찰 “새로운 제보 수사 당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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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서울중앙지검은 8일 한 전 총리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전달한 의혹이 있는 H건영 본사 등을 압수수색한 뒤 “수사기관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회사의 한모(49) 전 대표이사는 한 전 총리와 종친회에서 만나 친분을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주현 중앙지검 3차장검사는 “구체적인 수사 상황에 대해선 확인해줄 수 없다”고 전제한 뒤 “기소 후 신건(新件·새로운 사건) 수사에서 다른 제보가 들어와서 확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검찰 관계자도 “이번 수사는 기존의 뇌물 사건과는 전혀 무관한 것으로 유·무죄 판결과 상관없이 수사할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검찰은 이미 사기 등 혐의로 복역 중인 한 전 대표이사와 관계자들을 여러 차례 소환해 조사를 벌여 일부 혐의를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수사에 대해 한 전 총리 변호인인 조광희 변호사는 “9일 선고의 파장을 걱정해서 굳이 오늘 일(수사)을 벌인 것 아니냐”며 “검찰권 남용으로 지금까지의 수사 역시 무리하게 해왔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도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우상호 대변인은 “무죄가 나올 가능성이 높아지자 검찰이 이성을 잃고 있다”며 “서울시장 선거 기간 내내 민주당은 한나라당이 아니라 검찰과 싸워야 하는 거냐”고 말했다. 김민석 기획본부장은 “검찰이 수사를 하든지 말든지, 또 무죄를 선고받으면 된다”며 “그렇게 되면 검찰이 되레 심판받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법조계도 “검찰이 선고 전날 새로운 혐의에 대해 수사에 나선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무죄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판단에 따라 ‘출구 전략’을 시작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특히 김준규 검찰총장이 지난해 8월 취임 이후 ‘수사 패러다임 개선’ 차원에서 수차례 강조해온 ‘별건 수사 금지’ 원칙에도 어긋나는 것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별건 수사는 피고인의 특정한 혐의를 밝혀내기 위해 다른 혐의를 조사해 피고인을 압박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나 검찰은 “한 전 총리의 뇌물수수 혐의는 이미 기소돼 선고를 앞두고 있는데 무슨 별건 수사냐”는 입장이다. 대검 관계자는 “우리는 한 전 총리에게 유죄가 선고될 것으로 믿고 있다”면서 “9일 선고와 관계없이 정상적으로 진행되는 수사를 폄훼하기 위한 정치 공세”라고 말했다.

검찰의 이번 수사와 관련해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 김형두)는 “9일 선고 공판을 연다는 계획에 변함이 없다”는 입장이다. 추가 수사와 관련한 기록이 재판부에 제출되지 않는 이상 재판 결과에 반영되지 않을 것이라는 원칙론을 밝히고 있다. 재판부는 9일 재판에서 증인 신문 기록 등에 대한 양측의 의견을 들은 뒤 선고를 할 계획이다. 김주현 차장검사는 “(검찰) 내부에선 변론을 재개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면서도 “재개 신청은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방침은 재개 신청을 할 경우 오해가 증폭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철재·최선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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