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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종교계 대표들의 때아닌 지지성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종교단체라고 해서 현실과 유리된 삶을 살 수는 없다. 그러나 혼탁한 현실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종교인 만큼 종교단체 수장들의 행동은 어디까지나 사회의 화합과 발전을 위한 것이라야 한다는 게 우리의 믿음이다.

지난달 29일 조계종.성균관.원불교.천도교.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국민족종교협의회.한국천주교주교회의 등 8개 종교단체 대표의 명의로 발표된 언론사 세무조사와 관련한 성명서는 그런 면에서 지극히 실망스럽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김동완 총무가 제의하고 문안을 작성한 이 성명서는 "납세는 국민의 의무로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것" 이라며 "언론이기 때문에, 탈세로 인정돼 추징된 세금에 대해 저항한다면 과연 옳은 일이라고 국민이 생각하겠습니까" 라고 묻고 있다.

언론사도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인 이상 법률이 정한 바에 따라 세금을 내야 한다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당위이며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이를 부인한 적이 없다.

또한 이번에 추징된 세금에 대해서는 이의신청과 소송 등 제도가 보장한 절차가 남아 있으며 이를 거쳐 적법성이 가려지게 될 것이다. 대부분 언론사가 이런 법적인 구제절차에 따라 일을 진행하고 있을 뿐 세금을 내지 않겠다고 저항하는 언론사는 없다. 성명서가 밝힌 대로 언론계이기 때문에 저항할 것이라고 종교계가 생각한다면 이는 고정관념 내지 편견일 뿐이다.

더욱이 이 성명서는 한국천주교주교회의의 동의를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이 단체가 성명서에 동참한 것처럼 의장 박정일 주교의 이름까지 올려놓은 것으로 드러났다. 조계종측 참석자도 유보입장을 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엇 때문에 종교 지도자들이 국세청 발표에 때맞춰 황망히 이런 '숫자 늘리기' 방법까지 동원했는지 그 속내를 알기 어렵다.

언론사 세무조사가 우리 사회의 '태풍의 눈' 이 되고 있는 현실에서 종교 지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해법을 찾아보려는 노력은 소중하다. 사회의 화합을 통해 서로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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