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게로프 바이올린 음반에 담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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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1940년초 러시아 모스크바. 현악 4중주단의 공연에 참석했던 스탈린이 공연이 끝난 후 연주자들과 만났다.

"자네들 왜 네 명만 연주하고 있나. 연주자들이 많으면 더 좋은 소리가 날 텐데. 또 한가지… 왜 모두 앉아서 연주하고 있지?" "그렇다면 몇명으로 할까요?" "적어도 열 명은 돼야지!"

이렇게 해서 소련에는 10인조 바이올린 앙상블이 대거 출현했다. 앉아서 연주할 수 밖에 없는 첼로는 자연히 '탈락' 의 고배를 마셨다.

유대계 러시아인들이 이스라엘로 이주해온 후부터 바이올린 앙상블의 전통도 되살아났다.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전설적인 바이올린의 거장 다비드 오이스트라흐를 사사한 미하일 파르하모프스키가 93년에 창단한 '비르투오지' 가 바로 그런 앙상블이다. 파르하모프스키를 비롯한 10명의 단원이 모두 바이올린 독주자로도 활동 중이다. 2백50곡이 넘는 편곡 레퍼토리를 보유하고 있다.

어릴적 고향 노보시비르스크에서 파르하모프스키가 단원으로 있던 바이올린 앙상블의 연주를 접했던 유대계 바이올리니스트 막심 벤게로프(27.사진)가 '비르투오지' 와 함께 소품집을 냈다. EMI 레이블로 나온 '벤게로프와 비르투오지' 가 그것이다. 바이올린 독주와 바이올린 앙상블, 피아노를 위한 편곡으로 빚어내는 색다른 화음이다.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즈' , 브람스의 '헝가리 춤곡' 제1.5.7번, 드보르자크의 '유모레스크' ,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 , 차이코프스키의 '고향의 추억' , 하차투리안의 '칼의 춤' , 마스네의 '타이스의 명상곡' 등 귀에 익은 명곡들이 바이올린의 풍부한 화음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뿐만 아니라 비토리오 몬티의 '차르다슈' , 안토니오 바치니의 '요정의 춤' , 마누엘 퐁세의 '에스트렐리타' , 오토카르 노바체크의 '무궁동' 등도 함께 수록돼 있다. 음향이 좋기로 세계적으로 소문난 빈 무지크페어라인잘에서의 지난 4월 연주 실황을 녹음한 것이다.

벤게로프는 '비르투오지' 와 함께 오는 10월 16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에 선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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