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미국의 강압성 드러난 담배협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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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이달 중순에 열렸던 한.미간 통상현안 점검회의에서 정부는 다음달부터 수입담배에 40%의 관세를 부과하려던 방침을 바꿔 10%로 대폭 낮췄다. 그런데 그것이 부시 정부의 담배시장 개방압력 때문이라고 하니 미국 정부의 처사도 밉살스럽지만 국민건강권을 돌보지 않는 우리 정부의 처사에도 분개하지 않을 수 없다.

워싱턴 포스트지에 따르면 금연운동가들의 잇따른 손해배상 소송과 규제 강화로 곤경에 처해 있는 미국 담배회사들이 아시아 시장에서의 점유율을 늘리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부시 정부가 이에 동조해 개방압력을 넣었다는 것이다.

자국 국민의 건강권이 소중하면 다른 나라 국민의 건강도 소중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가 담배에 대한 차별대우 운운하며 '공정무역' 을 여기에 적용하는 것은 웃기는 일이다. 또 우리나라만 40%의 세율을 적용하려는 것은 아니며, 유럽연합과 멕시코 등은 이미 57.6%와 67%라는 높은 관세율을 부과하고 있지 않은가.

물론 미국 담배회사의 입장에서야 그동안 관세를 한 푼도 물지 않았기 때문에 40% 관세를 부담할 경우 가격경쟁력이 약화되고 시장점유율은 낮아질 수 있겠지만 이것은 담배회사의 경영상 문제지, 미국 정부가 나설 일은 아니라고 본다.

우리 정부도 담배에 관한 한 미국의 압력에 눌릴 것이 아니라 당초 생각을 굳건히 밀고나갔어야 했다. 협상 우위를 점하기 위해 미국 내 비판여론을 충분히 활용하는 전략적 고려도 했어야 했다.

정부는 물론 협상 상대방이 자동차와 철강 등 통상현안이 많은 미국이라는 점도 고려했을 것이며, 올해는 10%로 낮추지만 점차 올려 3년 뒤엔 40%가 되므로 크게 양보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물가안정과 물자수급 원활을 위해 세율이 탄력적으로 적용되는 할당관세를 백해무익한 담배에 적용한 것은 분명 잘못됐다.

또 담배에서 양보했다고 해서 미국이 자동차나 철강에서 한국의 이익을 고려해줄 리도 만무하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미국 내 비판여론을 충분히 활용하기 위해 재협상을 벌이는 것을 적극 검토했으면 한다.

또 이번 기회에 1988년 체결된 한.미간 담배양해록을 폐지.개정해야 한다. 담배양해록은 국산담배의 제조독점을 인정하는 대가로 수입담배에 무관세를 적용하고, 담배 관련 규제 개정시 미국과 사전 협의하도록 돼 있어 불평등협약이라는 비판이 높았다.

그러나 담배사업법이 개정돼 다음달부터는 독점체제가 풀리게 되므로 담배양해록이 있을 이유가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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