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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일기] 또 제3국 추방인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장길수군 일가족 7명이 진입, 난민 지위와 망명을 요구 중인 베이징의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에서 5분 거리엔 신위안리(新源里)라는 작은 동네가 있다. 이곳은 한국 식당과 옷가게.가라오케 등이 밀집된 베이징(北京)의 한인 타운 같은 곳이다. 이 곳에서 장군 일가족 같은 탈북자들을 보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저녁을 먹고 나오는 한국인들 뒤를 쫓아 "조선에서 왔는데 배가 고프다" 며 애처로운 손길을 내민다. 그러나 외면당하기 일쑤다. 정말 북한에서 왔는지, 아니면 조선족 꼬마들이 탈북자 행세를 하며 동냥에 나선 것인지 모르겠다는 이유에서다.

그 수가 한둘도 아니며 베이징 서우두(首都)공항에까지 나타나 자신을 탈북자라고 소개하며 약간의 돈을 요구하는 이들을 탈북자라고 믿기는 어렵다는 게 한국인들의 변명이다. 그러나 이같은 변명을 하는 한국인들 표정은 언제나 겸연쩍다. 스스로 궁색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외면의 실제 이유는 탈북자들을 만나는 일이 이제는 일상사처럼 돼버린 탓이다. 처음엔 얼마간의 금전 지원도 하고 도와줄 일이 없을까 고민도 하지만 뾰족한 방법을 찾을 수가 없다.

게다가 탈북자를 지원하는 민간단체를 색출하는 임무를 띠고 탈북자 행세를 하는 북한의 특무(特務)들도 있다. 중국 공안의 눈도 무섭다.

장길수군 일가족 사건은 바로 이같은 무관심이 팽배한 베이징의 꽉 막힌 분위기를 깨뜨리려는 듯 터졌다. 베이징의 중앙일보 사무실로 적지 않은 교민의 전화가 걸려 온다. 그동안의 무관심에 대한 회한이 많다. 나아가 이번 사건이 1997년 황장엽(黃長燁)씨를 처리했을 때와 같아선 안된다는 지적들이 주류다.

黃씨가 워낙 고위층이라 그를 제3국으로 추방해 해결했지만 黃씨에 국한된 1회성 처리였다는 것이다. 장길수군 일가족 7명을 또 다시 특수한 예로 규정, 3국에 추방해 해결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이 특수한 예가 된 것은 국제기구인 UNHCR에 진입하고 세계 매스컴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데 성공한 측면이 크다.

그러나 이처럼 1회성 사건과 이에 대한 1회성의 대증적 처리로 마무리돼서는 안된다는 주장이 많다.

유상철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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