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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삶] 성남 '문화교육원' 지인신 목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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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경기도 성남시 수진동 제일시장 골목은 매주 일요일 오전이면 동남아 젊은이들로 북적거린다. 지난 5월 시장 건물 한켠에 '외국인근로자 문화교육원' 이 문을 연 이래 볼 수 있는 낯익은 풍경이다.

성남 주변의 캔.가구.목재공장에서 일하는 이들 외국인 노동자 1백여명은 휴일이면 이곳에 모여들어 조촐한 파티를 여는 등 친분을 나눈다. 그래서 이곳은 열악한 노동환경에 찌든 이들에게 해방구이자 집과 같은 안식처로 통한다.

지난 24일 오후 한국어 교습이 끝난 후 외국인 노동자들이 동요 '나비야' 를 함께 부르자 이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다. 10년째 외국인 노동자의 벗이 되온 지인식(池寅植.50)목사.

池목사는 지난 1990년 성남에 '외국인 공동체' 를 결성한 후 동남아에서 온 노동자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진료활동을 펴왔다. 외국인 공동체는 지난달초 '문화교육원' 으로 탈바꿈해 인근 체육관과 연계, 합기도.수영 강습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이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문화적 욕구를 해결해주는 겁니다. "

池목사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대우과 임금체불에 관심을 쏟았던 10년전과 달리 현재는 이들의 복지와 여가활동에 신경쓰고 있다. 요즘은 외국인 노동자 중 고학력자가 많은데다 이들이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池목사는 이를 위해 한국어 뿐만 아니라 악기 연주도 함께 가르치고 있다. 한국어는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를 기본으로 하지만 '불난다' '(기계)눌러' '아파요' 같은 생활용어를 더 강조한다.

3년전부터 꾸준히 해 온 악기 강습은 池목사가 악기를 직접 배운 뒤 노동자들에게 하나둘씩 전수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트럼펫.전자오르간.클래식 기타.아코디언 등 한가지씩의 악기를 취미로 연주할 수 있게 됐다. 池목사가 외국인 노동자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경기도 광주에서 교목 활동을 할 때였다.

공장에서 심하게 구타당한 방글라데시 청년을 우연히 치료해주면서 외국인의 열악한 노동 현실에 눈뜨게 됐다. 이후 입소문을 통해 많은 외국인이 池목사에게 의지했다.

"비좁은 공간에서 생활해 피부병이 만연했지만 약도 없었습니다. 피부병에 무좀약을 발라줄 정도였죠. "

池목사는 약값을 구하기 위해 가락시장에서 채소를 배달하고 가구공장 일도 닥치는대로 했다.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던 그때와 달리 현재는 주위에서 의료.이발 자원봉사 뿐만 아니라 재정적 도움도 커 큰 힘이 되고 있다.

이렇게 외국인들의 처우개선에 열을 올리는 池목사와 가족들은 정작 인근의 조그만 반지하방에 세들어 살고 있다.

"외국인노동자의 집에 비하면 우리집은 궁전이지요. 이들이 한국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고 떠날 수 있다면 그것보다 좋은 것은 없을 겁니다. " 池목사의 작은 소망이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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