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일가족 일곱명이 중국 베이징(北京)주재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에 들어가 난민 지위를 요청하며 사실상 농성을 벌이는 초유의 사태에 세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이들이 중국 은신기간 중 그림과 출판물을 통해 북한의 참상을 세계에 고발해온 장길수군 일가족이란 점에서 UNHCR와 중국 정부의 처리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1997년 1월 시작된 張군 일가족의 탈북 오디세이는 한 편의 처절한 드라마다. 처음에는 모두 17명이 북한을 빠져나왔으나 다섯명은 중국 공안당국에 체포돼 북한으로 송환됐고, 그중 한명은 재탈북했다. 세명은 몽골로 도피했으며 세명은 행방불명 상태다.
북한에 압송된 가족 중 두명은 정치범 수용소에 억류돼 있다. 뿔뿔이 흩어지고 남은 일곱명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제 UNHCR를 찾은 것이다. 이들은 "국제법상 난민 지위를 인정받아 한국으로의 무사귀환이 보장될 때까지 현 위치를 고수하겠다" 며 비장한 각오를 밝히고 있다.
이들이 북한으로 송환될 경우 가혹한 박해에 시달릴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그래서 이들은 '최후의 피난처' 라고 믿고 UNHCR를 택했다. UNHCR측은 "이들이 강제 송환되는 일이 없기 바란다" 고 밝히면서도 "전적으로 중국 정부의 결정에 달려 있다" 고 말하고 있다.
UNHCR가 이들에게 난민 지위를 부여하더라도 체류 당사국인 중국이 거부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물론 곤혹스러울 것이다. 북한과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데다 이번 사건이 적게는 수만명에서 많게는 수십만명으로 추산되는 중국 내 은신 탈북자들에게 합법적 망명의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점도 부담일 것이다.
더구나 중국은 북한과 불법입국자 송환협정을 맺고 있다. 우리는 어려운 문제일수록 원칙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그 원칙은 어떤 경우에도 인도주의는 정치적 고려에 우선한다는 것이다. 張군 일가는 명백한 난민이다.
일곱명의 생명이 걸린 이들의 호소를 중국 정부가 외면해선 안된다. 이들이 북한으로 송환될 경우 예상되는 박해에 대한 인도적 고려가 그 어떤 고려보다 선행돼야 한다. 정부도 이런 원칙에서 중국 정부를 설득, 최소한 안전한 제3국행이라도 관철해야 할 것이다.
이번 사건은 그동안 소홀히 해온 국내 탈북자 문제에 정부가 관심을 새롭게 돌리는 계기가 돼야 한다. 한 해 수십명선에 머물던 국내 입국 탈북자수는 지난해 3백12명으로 크게 늘어 현재 총 1천3백19명에 달하고 있다.
이들에 대한 정착지원 시설이라고는 안산에 있는 '하나원' 한 곳뿐이다. 그나마 1백명 규모의 수용능력은 이미 포화상태다. 지난해 4월 남북 정상회담 계획이 발표된 이후 탈북 귀순자들의 입국사실조차 공개되지 않고 있다.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배려로 보이지만 탈북자 문제는 외면할 수 없는 또하나의 남북 현실이다. 햇볕정책은 햇볕정책이고, 인도주의는 인도주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