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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포럼] 어떤 귀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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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06면

일본에 유출됐다가 최근 고국의 품에 안긴 조선시대 문인석(文人石)과 동자석(童子石) 70점이 7월 1일부터 옛돌박물관에서 일반에 공개된다고 한다.

일본인 구사카 마모루(日下守.66)가 소장했던 것들로 54점은 기증받고 16점은 옛돌박물관 설립자인 ㈜세중 천신일(千信一.58)회장이 사재로 사들인 것이다. 옛돌박물관은 한판의 살풀이춤을 곁들인 성대한 환수기념식을 갖고 석인(石人)들의 고단한 삶을 위로한 뒤 만남의 장을 연다고 한다.

***문인석·동자석 70점 환수

따지고 보면 석조유물은 일제시대 한국에 와서 둥지를 틀었던 일본인들이 패전 후 귀국하며 함께 현해탄을 건너가기 시작했다고 하니 능묘를 지키던 위치에서 떼밀려 낯설고 외로운 외국생활로부터 길게는 56년 만에 귀향하는 셈이다.

70년대 초 경주 불국사에서 석물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이래 2백80점을 헤아리는 문인석과 동자석을 사들여 자신의 소유인 고다마로카(樹神綠化)농장에 들여놓고 '이조 석인의 고향' 이라고 이름 붙인 구사카인 만큼 석인을 내놓는다는 일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유통업으로 성공한 그는 신장병으로 몇년 전부터 한쪽 팔을 쓰지 못하게 되자 아예 사업에서 손을 떼고 소장하고 있는 석인.조선가구.고려청자 등 한국 문화재 1천여점으로 한국박물관 설립을 꿈꿨다니 우리 문화재에 대한 그의 애착을 짐작할 만하다.

그런 그가 산 값의 3분의 1수준에서 유상기증을 하고 그의 세곱이 넘는 석인들을 무상으로 기증하기로 한 것은 '불황이 가져다 준 깨우침' 이었다. 일본경제의 버블이 꺼지면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그에게 브루나이 왕족이 농장의 석인들을 일괄 구매하겠다는 뜻을 비쳤던 것.

소장이냐, 판매냐를 두고 고민하던 그는 이건 한일친선협회중앙회부회장의 권고를 받아들여 '제3의 길' 인 '석인의 진짜 고향 찾아주기' 를 결심했다고 한다. 석인 기증서에 서명하던 날, 구사카는 "딸을 시집보내는 것처럼 반은 슬프고 반은 기쁘다" 면서도 "고향으로 돌아가는 석인들을 보라. 웃고 있지 않은가" 라고 말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요즘 석인 한개가 60만~80만엔을 호가할 정도로 일본인들의 애호가 대단하다고 한다. 옛돌박물관측이 도쿄와 교토의 공공지역을 중심으로 한 석조유물 조사에 따르면 우리 문화재가 확인된 곳만도 교토국립박물관을 비롯해 11곳을 헤아린다.

개인 정원 장식용으로 많이 쓰이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그 수가 얼마나 될지 어림하기조차 힘들다. 이런 붐을 타고 요즘에도 국내 석물의 밀반출이 끊이지 않고 있다.

비단 석인뿐일까. 임진왜란부터 시작됐다는 우리 문화재의 일본 유출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임진왜란을 겪은 지 4백여년의 세월이 지났건만 어찌된 셈인지 문화재 도굴과 밀반출을 단속하는 일은 조금도 나아진 것 같지 않다.

유출된 문화재를 환수해 오는 일도 제자리 걸음이긴 마찬가지다. 해방 이후 주권국가를 수립한 지 반세기가 훨씬 지났고 경제규모가 세계 11위라는데도 문화재 부문에서만은 달라진 것이 없다.

해외로 유출된 우리 문화재는 공식 통계만으로 20개국 7만4천5백48점을 헤아리고 있다. 그러나 환수된 문화재는 기껏 4개국 4천4백38점에 지나지 않는다.

***쥐꼬리만한 문화재 예산

유물 구입예산이 국립중앙박물관 30억원에 민속박물관 3억여원 정도가 고작인 현실에서 그나마 4천여점의 문화재가 환수된 것은 개인의 기증에 힘 입은 바 크다.

1987년 국립중앙박물관에 고려.이조자기 1천82점을 기증한 이는 이우치 이사오(井內功)요, 97년 국립진주박물관에 전시하기를 희망하면서 삼국시대 기와에서 자기.그림 등 1백71점을 기증한 사람은 재일동포 김용두씨였다. 박물관 관계자는 "환수 문화재 가운데 구입을 한 것은 20% 정도" 라고 말했다.

한국문화를 사랑하고, 경주 매니어이며, 석인을 수호신으로 여기면서도 고향을 찾아줘야 한다는 지인의 권고를 귀담아 듣는 구사카의 우리 문화에 대한 깊은 애정이 가슴을 파고드는 만큼 우리의 처지가 더없이 부끄럽기만 하다.

잃어버린 우리 것을 되찾기 위해 우리는 언제까지 외국인 소장가의 마음이 움직이기만을 학수고대해야 하는 것일까.

홍은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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