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경제] 파업 언제 생기고 어떻게 변해왔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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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최근 TV에서 파업 장면들을 보고 놀란 적이 있을 거예요.

환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연좌농성을 벌이는 의사와 간호사들, 비행기가 뜨지 않아 손님은 발을 동동 구르는데 아무 상관없다는 듯 농성장에 앉아 있는 조종사들, 붉은 띠를 머리에 두르고 춤추며 큰 소리로 노래 부르는 노동자들.

왜들 그럴까 궁금하지요?

하지만 답은 간단하지 않아요.

역사.문화.전통.이념이 뒤얽힌 문제이기 때문이지요.

노동자와 사용자의 이해가 워낙 첨예하게 맞서 있다 보니 어느 한쪽만 옳다고 얘기하기도 힘들지요.

'파업' 이란 노동자들이 일을 일정 기간 집단으로 안하는 것을 말합니다. 파업은 노동자와 기업 모두에게 엄청난 손실을 주지요.

노동자들은 임금을 받지 못하고, 회사는 수천억원의 손해를 보기도 합니다. 심지어 회사가 문을 닫기도 해요.

노동자들은 그래도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파업을 합니다. 최근 서울대병원 파업은 퇴직금 누진제를 인정해 달라는 것이었고요, 항공사 파업은 조종사들이 경영에 참여시켜 달라고 요구했던 것이지요.

이렇게 보면 노동자들은 이기주의자 같지요?

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랍니다. 회사 경영에 참여할 수 없는 노동자로서는 파업이 자기 주장을 관철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파업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어요.

파업은 18세기 산업혁명과 같이 시작했지요.

당시만 해도 노동자들은 힘이 없었지만 산업이 발전하면서 노동자 수가 늘자 점차 힘을 발휘했습니다.

19세기 중반 이후에는 사회주의자나 노동운동가의 지원으로 조직적으로 파업을 하면서 사용자를 괴롭혔어요.

20세기 들어 노동자들은 본격적으로 사용자와 싸울 수 있었습니다. 1917년 러시아혁명은 사회주의자들의 전략이 먹혀 들어 성공했던 것이지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전까지 선진국들은 수도 없이 파업을 경험했답니다. 26년 임금삭감에 저항하기 위해 단행된 영국의 총파업은 그 중에서도 아주 유명했어요.

29년 시작한 대공황도 노동운동에 중요한 영향을 줬습니다. 미국 정부는 너무 가난한 노동자들이 소비를 못해 공황이 발생한 것으로 보고 노동자 우대정책을 펼치며 파업이 있어도 공권력을 거의 투입하지 않았습니다.

프랑스는 36년 총파업을 단행해 사용자들을 완전히 제압하기도 했습니다. 이때 프랑스 노동자들은 공장시설 점거라는 새로운 파업방법을 동원해 주 40시간 노동, 주 5일 근무, 유급휴가 도입이라는 어려운 소득을 올렸지요.

전쟁이 끝나고 호황이 오자 사용자들은 노동자의 소득이 늘도록 배려했습니다. 50~60년대 노동자들은 '부유한 중산층' 이 돼 가고 있었어요.

70년대 오일쇼크는 상황을 역전시켰습니다. 사용자들은 약간의 파업에도 예민하게 반응했습니다.

그런데, 이때부터 유럽과 영국.미국은 전혀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유럽 대륙은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권한을 주며 법을 지키게 했습니다.

반면 영국과 미국은 강압적인 방법으로 법을 지키게 했지요.

우리나라의 노동운동은 아주 특이한 사례로 꼽힌답니다. 식민지 시절 노동운동은 독립운동과 연계됐지요.

처음부터 정치색을 띤 것이었어요. 일제시대인 1937년 원산에서 아주 유명한 총파업이 있었어요. 일본인 중간관리자가 조선인 노동자를 구타한 사건이 계기였어요.

해방 후에는 반(反)독재.민주화 운동과 연계됐어요. 70년대 YH사건이나 87년 6월 항쟁이 대표적이지요.

전문가들은 이같은 역사와 전통이 이제 문제로 드러나고 있다고 말하고 있어요. 한국노동연구원의 양병무 부원장은 "전통.문화.역사가 구조적으로 결합했다" 며 "파업이 너무 과격하고 법을 지키지 않는 게 문제" 라고 지적합니다.

화염병을 던지고 공장시설이나 도로를 점거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것이지요. 파업을 하기 전에 조정절차를 거쳤는지, 노조 이외의 사람이 개입했는지, 정치적 목적은 없는지, 폭력과 파괴 행위는 없었는지가 합법 여부를 따지는 기준입니다.

노조 일만 하는 전임자에게 급여를 줘야 하는지, 일을 안하고 파업할 때도 급여를 줘야 하는지도 문제가 되고 있지요.

회사측은 노조 전임자의 경우 회사를 위해 일하는 게 아니니까 회사가 급여를 줄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지요.

또 파업기간 중에는 일을 안하니까 그 기간만큼은 급여를 주지 않는다는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이념문제도 복잡해요. 노동운동은 사실 사회주의와 연계될 가능성이 크답니다. 사회주의 이념 자체가 노동을 중시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대다수 전문가들은 노동운동은 어디까지나 노동자의 생활과 근로환경을 개선하는 선에서 끝나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념이 개입할 때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문제를 제기하게 되고, 자칫 사회안정을 깰 수 있다는 것이지요.

식민지도, 독재시대도 아닌 요즘 노동운동의 정치.사회성은 배제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재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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