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일 ‘일본인 마약사범 사형’ 신경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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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중국에서 마약 밀매 혐의로 사형 확정 판결을 받은 일본인에 대한 형 집행이 임박한 가운데 중·일 양국 간에 신경전이 고조되고 있다.

중국 당국은 지난달 30일 일본인 마약밀수범 아카노 미쓰노부(赤野光信·65)에 대한 사형 집행 계획을 일본 정부에 통보했다. 사형은 6일 집행될 예정이다.

아카노는 2006년 중국 다롄(大連)공항에서 마약 2.5㎏을 일본으로 반출하려다 검거돼 마약밀수죄로 사형판결을 받았다. 중국은 1일 마약사범으로 복역 중인 다른 일본인 사형수 3명에 대해서도 8일 형을 집행하겠다고 추가로 통보했다. 중국에서 일본인의 사형집행은 1972년 중·일 국교정상화 이후 처음이다.

일본은 형집행 강행 소식에 발칵 뒤집혔다. 일 언론들은 “성의 없이 이뤄진 조사와 재판으로 죽어야 한다니 억울하다”는 사형수의 심경을 보도하며 일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했다.

요미우리(讀賣)신문은 3일 사설을 통해 “중국의 사법절차가 적절했는지 의문시되는 상황에서 일본인 4명에 대한 형집행이 이뤄진다면 일본 국민의 대중국 감정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외상은 청융화(程永華) 주일 중국 대사를 외무성으로 불러 중국 정부가 일본인 마약밀매범의 사형을 집행키로 한 데 우려를 표명했다.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총리 역시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며 형집행에 대한 불만을 나타냈다. 히라노 히로후미(平野博文) 관방장관은 “(일본)국민 감정에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며 중국을 압박했다. 각국이 범죄에 대해 형을 부과하는 것은 해당국의 전권인 만큼 내정간섭의 인상을 주어선 안 된다는 게 일 정부의 입장이다. 그러나 흉악범죄도 아니고 일본에서는 7~10년의 징역형에 해당하는 마약밀수로 타국에서 극형을 받아야 하는 자국민을 나 몰라라 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3일 베이징에서 원자바오(温家寶) 중국 총리와 경제관련 회담을 한 간 나오토(菅直人) 부총리 겸 재무상은 “일본 기준에서 보면 형벌이 과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고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나 원 총리는 단호했다. “그가 거래한 마약은 수천 명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는 중대한 범죄”라는 게 원 총리의 주장이다. 지난해 말 영국인 마약사범의 사형 집행 때도 고든 브라운 총리가 나서 감형 요청을 했지만 중국 당국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한동안 두 나라 관계가 험악해지기도 했다. 유엔 등 국제 인권단체도 가세해 중국을 압박했으나 중국은 본체만체했다.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 인터내셔널)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에서 이뤄진 사형집행은 수천 건에 달한다.

도쿄=박소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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