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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혁 칼럼] '국정 쇄신' 어디갔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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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최근 우울한 나라 상황을 보면서 두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하나는 권력을 쥔 분들의 정권재창출 집념이 더욱 더 강해지겠구나 하는 생각이다.

다시 정권을 잡지 못하면 청문회에 서게 되거나 '피바람' 이 불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 들수록 재집권에 더욱 집착할 것은 뻔한 일이다. 정권에 원한을 품고 두고 보자는 세력이나 사람이 많을수록 정권교체 후의 상황이 걱정스럽게 된다.

*** 무거워지는 퇴임후 부담

이미 현정권과 야당 사이에는 심각한 원한축적이 돼 있다. 아들 병역으로 골병 들게 하고 총풍.세풍으로 조지고, 대화다운 대화가 없는 사이였으니 그 야당의 집권을 두려워할 만도 하게 됐다. 얼마 전에는 야당 총재를 향해 청와대대변인이 "…자질이 의심스럽다" 고 바로 그 '인간' 을 공격하기도 했다.

최근엔 언론 세무조사와 불공정거래조사로 주요 신문과도 갈등을 빚고 있다. 납득할 수 없는 기준과 잣대로 엄청난 세금을 물리고 신문고시라는 이름으로 신문업계에 직접 간여할 길까지 만든 권력측의 정치적 의도에 대해 신문들의 저항이 불가피한 형국이다.

권력측으로선 이런 방법으로 신문에 대한 자기네의 '목적' 을 달성했다고 보는지 모르나 이번 일 역시 퇴임 후의 부담을 더 무겁게 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벌써 여당에서는 신문에 꼬투리잡힐 일이 없도록 조심하라는 말이 나온다고 한다. 이제 신문 때문에 또 한번 재집권의 집념을 더 다지게 된 것인가.

그러잖아도 현정권은 그동안 비우호적 환경을 많이 만들어 왔다. 의료개혁을 한다고 의사들과 척을 졌고, 교육개혁으로 교사들과도 냉기류가 흘렀다. 한때 손발이 맞던 노동계와도 최근 험악한 관계다. 누구 말대로 요즘 많은 사람들이 성이 나 있다. 재계는 재계대로, 근로자들은 근로자대로, 학부모.교사.학생은 그들대로, 공무원은 공무원대로… 모두 성이 난 상황이다.

계좌추적 같은 것을 당한 사람, 낙하산 때문에 밀려난 사람들은 더욱 더 성이 나 있다. 거액의 세금 추징을 당하고도 계속 월급이 나오겠느냐고 주변의 걱정을 듣는 신문기자들도 몹시 성이 나 있다. 권력 쥔 분들에게 어찌 걱정되는 상황이 아니겠는가.

요즘 들어 또 한가지 생각나는 것은 집권측에 우수한 인물이 좀더 있었으면 하는 점이다. 최근 큰 일이 많이 터졌지만 뭐 한가지 매끄럽게 처리되는 것을 보기 어렵다. 우수한 사람이 있다면 이런 대응은 안나왔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느낄 때가 많다.

무엇보다 상황이 이 지경이 된 것 자체가 집권측에 '사람 없음' 또는 사람이 있어도 역할을 못하는 상태임을 말해준다. 가령 북한의 영해침범 사건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침범엔 제대로 대응도 못하면서 북한이 간절히 요구할 때나 거론할 북방한계선 축소니 무해(無害)통항 허용이니 하는 소리를 우리가 먼저 해버렸으니, 어쩌면 일처리가 이럴까.

신문 세무조사도 최대한 가혹하게, 최대한 부풀리는 게 능사가 아니었을 것이다. 민감한 문제인 만큼 머리 좋은 간부라면 가급적 탈 잡히지 않게, 최대한 합리적인 '물건' 이 되도록 세심하게 신경을 썼을 것이다.

민망하게도 DJ가 여덟번이나 김정일의 답방을 촉구하기까지 중간에 "그만 하시지요" 라고 만류할 인물이 없었는지도 안타깝다. 북한의 영해침범 와중에 골프를 친 군 수뇌들의 감각과 판단력은 또 어떤가.

*** 국면 바꾸기 새 바람 필요

이처럼 요즘 상황을 이리저리 생각하면 나라 장래가 암담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대로 가면 내년 대선은 유례없이 치열하고 험악한 선거가 되지 않을까. 재집권 집착이 강할수록 무리수가 나오기 쉽고 무리수가 나오면 재집권은 더 어려워질 텐데 집권측이 이런 점을 생각하고 있을까.

대북정책.언론정책 등이 국민적 합의를 모으는 방향이 아니라 계속 갈등과 분열을 증폭시켜 나가지 않을까… 이런 걱정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리고 국정을 요리하는 집권진영의 '사람' 과 '능력' 문제를 생각해도 앞으로 잘 풀려나갈 것 같은 생각을 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남은 1년6개월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험악한 대선전, 커져가는 갈등.분열 등이 눈에 뻔히 보이는데 이대로 그냥 가야 할 것인가. 그래서는 안될 것이다.

국면을 바꾸고 돌파구를 여는 새로운 노력과 새 바람이 나와야 할 것이다. 깊어가는 원한을 완화.해소해 나가고, 국정과 정치를 좀더 원숙하고 세련되게 이끌 새 팀.새 인물.새 방식이 필요하다. 가뭄은 끝났는데 국정쇄신책은 지금 어디에 가 있는가.

송진혁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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