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선별대응' 이 영해수호 의지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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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한 북한 어선이 우리 해군의 경고사격을 받고 퇴각한 사건이 어제 새벽 발생했다.

NLL을 넘어온 북한 어선에 대해 정선을 명령했으나 저항함에 따라 세 차례의 경고방송 후 공포탄 9발을 발사해 퇴거시켰다는 것이 해군 당국의 설명이다. 모처럼 우리 해군이 유엔사 교전수칙과 작전예규에 따라 제대로 대응했다고 본다.

그동안 정부는 영해와 NLL을 침범한 북한 상선에 대한 군의 무기력한 대응을 '비무장 민간선박' 이라는 이유로 옹호해 왔다. 비무장 민간선박에 대해 발포할 경우 전쟁위기가 고조될 수 있고, 이에 따라 경제가 무너질 수 있다는 논리를 펴왔다. 무해통항권(無害通航權)을 내세워 국제사회의 비난이 우려된다는 주장도 했다.

이런 논리로 보면 이번 어선에 대해서도 무력대응을 하지 말았어야 옳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은 군의 이번 조치를 영해수호 의지를 보여준 적절한 조치라고 높이 평가하고 있다. 물리적 대응이 쉽지 않은 대형 상선은 그냥 보내주고, 소형 어선에 대해서는 무력대응하는 것이 과연 안보의지고, 영해수호 의지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북한 상선들은 통신검색에 순순히 응했지만 이번 어선은 고속정을 향해 횃불을 던지고 각목과 쇠파이프로 위협하는 등 저항할 뜻을 보여 부득이 경고사격을 했다고 군 당국은 설명하고 있는데 이 또한 납득하기 어렵다.

"김정일(金正日)장군이 개척한 항로" 라며 정선명령을 무시한 채 큰 몸집을 무기로 밀고 들어오는 상선은 저항할 뜻이 없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소린가.

북한 상선에 대해서도 처음부터 이번처럼 원칙대로 대응했어야 옳다. 그런 다음 영해.NLL 통항과 관련한 현실적 문제를 북한과 협상을 통해 해결하는 순서를 밟았더라면 국론을 분열시키는 소모적 논쟁도 없었을 것이고, 미 국방장관의 입을 빌려 군의 조치를 변명하는 구차한 모습을 안 보여도 됐을 것이다. 북한과 별도 합의가 없는 한 북한 선박의 NLL.영해 침범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이번처럼 원칙대로 대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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