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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고시 뭐가 문제인가] 시장경쟁 해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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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신문시장 전반을 규제하는 준거가 될 신문고시가 확정됐다. 공정위가 2년 전 폐기한 신문고시의 부활을 시도한 것은 지난 2월 말 국세청과 공정위의 언론사 조사가 한창인 시점이었다. 공정위는 고시 부활을 반대하는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 민간위원들과 의견 대립을 빚기도 했다.

공정위는 신문고시가 "신문시장의 불공정 행위를 사전에 예방하고, 업계의 자율활동을 법적으로 뒷받침하는 것" (이남기 공정거래위원장)이라고 강조하지만, 신문시장에는 신문 본연의 기능을 억압하는 족쇄로 작용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열쇠는 공정위가 쥐고 있다. 민간 규제개혁위원인 김일섭 한국회계연구원장은 "신문협회의 자율규약이 정착되기까지는 여러 시행착오가 있겠지만 이를 이유로 사업자단체의 시정 권한을 다시 빼앗아 온다면 이는 어떤 이유에서든 불행한 일" 이라고 주장했다.

◇ 규제와 시장왜곡=전문가와 신문시장 관계자들은 신문고시가 신문업계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했다. 고시가 판매와 광고 등 신문사 경영전반에 대한 규제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신문 판매의 수단인 무가지 제공과 무료 투입이 규제된다. 인쇄한 뒤 바로 폐기처분되는 신문을 부수에 포함시키는 것도 금지된다. 신문사와 지국간 정당한 전속계약은 유효하지만, 신문사가 지국에 부당하게 경쟁신문을 팔지 못하도록 강요할 수는 없다. 지역에 따라선 한 지국이 여러 신문을 취급하는 공동판매가 부분적으로 생겨날 수 있다.

정호열 성균관대 교수는 "공정위가 모든 신문사에 대해 동일하게 고시를 적용한다면 영세 신문의 존립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 고 우려했다.

김정호 자유기업원 부원장은 "문제는 신문시장에 영향을 주는 각종 규칙을 정부가 인위적으로 정하고, 세부 기준을 신문업계가 담합해 만들도록 하는 데 있다" 면서 "고시에는 소비자(독자)들이 덜 보는 군소 신문들을 사실상 보호하는 내용이 많이 담겨 있다" 고 지적했다.

◇ 남은 문제=광고와 기사를 연결지은 대목 등 문제 조항이 여전하다는 지적이다. 광고를 따기 위해 불리한 기사를 싣거나 게재하겠다고 위협하는 악의적인 경우를 규제한다지만, 현실에선 불리한 기사를 봉쇄하는 조항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문협회는 이런 부분의 삭제를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시장지배적 지위 사업자에 대한 규제를 별도로 정해놓은 것도 문제 조항으로 지목된다. 시장지배적 지위 사업자로 간주될 가능성이 있는 신문은 중앙.조선.동아일보 등 3개지다. 그래서 일각에선 빅3를 압박하기 위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정호열 교수는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과 신문시장 불공정 행위를 함께 규제한 것은 법령에서 위임한 한계를 벗어난 것으로 법 체계상 문제가 있다" 고 말했다. '허위 또는 근거없는 내용으로' 란 조건이 붙긴 했지만 광고주 등에게 불리한 기사를 싣는 것에 대한 규제도 포함돼 있다. 공정위는 "기사의 진실성에 대한 판단은 공정위가 하게 된다" 고 말했다.

자율규약 제정과 신문협회와 공정위간의 양해각서(MOU) 체결도 남은 문제다.

공정위가 신문협회의 자율시정 노력을 최대한 존중하겠다는 다짐을 지키지 않을 경우 신문고시는 신문시장을 좌우하는 규제가 될 수 있다. 임상원 고려대 교수는 "신문고시가 만들어졌어도 고시를 적극적으로 적용하기보다 신문협회의 자율규약이 우선적으로 존중돼야 한다" 고 강조했다.

이상렬.서경호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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