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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영화] '테일러 오브 파나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3면

23일 개봉하는 '테일러 오브 파나마' (존 부어맨 감독)는 독특한 첩보 스릴러다. '007 시리즈' 의 제5대 제임스 본드로 활약한 피어스 브로스넌을 앞세워 겉으론 007식의 구성.화면을 흉내냈으나 내용.메시지는 전혀 다르다.

주인공이 지략이 뛰어나고 여자를 좋아한다는 점에서 007시리즈와 닮았으나 현대 국제정치의 이면을 비꼰다는 점에서 007식의 액션 활극과 거리가 멀다.

영국 아서왕의 얘기를 그린 '엑스칼리버' (1981년), 아일랜드의 전설적인 도둑을 다룬 '제너럴' (98년) 등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던 부어맨은 이번엔 냉엄해 보이는 국제 첩보전을 마치 한편의 농담처럼 비웃고 있다.

'테일러…' 는 좀 과장하면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 을 연상케 한다. 엉터리 재단사가 허세가 심한 임금을 실오라기 하나 없는 가짜 옷으로 보기 좋게 농락했듯 영화 속의 첩보원 앤디 오스나드(피어스 보로스넌)와 재단사 해리 펜델(제프리 러시)은 서로 속고 속이는 사기극을 통해 약육강식의 국제 정치를 신랄하게 풍자한다. 펜델의 부인역은 제이미 리 커티스가 맡았다.

오스나드는 대사관 부인과의 스캔들 때문에 파나마로 쫓겨온 영국 첩보원. 파나마에서 한건 올려 화려한 은퇴를 꿈꾸는 그가 파나마 정.재계 유력 인사들의 양복을 지어주는 펜델에게 접근한다.

그러나 문제는 펜델이 그다지 쓸모없는 정보원이라는 것. 빚에 쪼달리고 있던 그는 거짓 정부전복 음모 등 엉터리 정보를 오스나드에게 넘겨주고, 오스나드는 그것이 가짜인줄 알면서도 본국과 거래해 거액을 타낸다. 급기야 미국.영국.파나마 정부 사이에 일촉즉발의 위기가 벌어지는데….

스릴러치곤 긴장감이 부족하고, 코미디치곤 웃음이 빈약한 게 약점이라면 약점. 도입부도 다소 지루한 느낌이다. 다만 느글느글한 브로스넌, 소심하면서도 열정적인 러시의 연기는 수준급. 파나마의 이색적 풍광도 덤으로 얻는 즐거움이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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