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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들도 의자에서 일어났다, 어깨를 들썩이며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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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호 05면

영화 ‘바람의 전설’(2004)에서 우리의 풍식(이성재)이 ‘제비’ 친구 만수(김수로)의 지도로 사교 댄스의 첫 스텝을 턱 내딛던 순간, 그의 주변에는 거센 바람이 인다. 2일 저녁 세종문화회관에서 댄스 뮤지컬 ‘번 더 플로어’가 세찬 바람 소리와 함께 한국 공연의 막을 올렸을 때 이 장면이 떠올랐다. 풍식에겐 단순한 ‘춤바람’을 넘어 최고 춤꾼을 향한 욕망이었을 그 바람은 이번에는 과연 어떻게 무대를 태울(Burn the Floor) 것인가.

댄스 뮤지컬 ‘번 더 플로어’, 4월 2~7일 서울 세종문회화관 대극장

‘번 더 플로어’는 1999년 초연된 작품이다. 공연제작자 할리 매드카프가 97년 엘튼 존의 50회 생일파티에서 VIP를 위한 댄스 공연을 보고 영감을 받아 시작했다고 한다. 최고의 볼룸댄스 선수들이 한자리에서 펼치는 다양한 춤들의 향연-. 2007년판을 한층 업그레이드했다는 이번 무대는 노래도 늘어나고(19곡에서 25곡) 베르사체가 참여했다는 의상도 한층 화려해졌다.

무대는 별다른 스토리가 없는 대신 공격적이었다. 호주 출신으로 각종 세계 댄스스포츠 대회를 석권한 예술감독 제이슨 킬킨슨은 차차와 왈츠·폭스트롯·맘보·삼바·룸바·살사·탱고·자이브·파소 도블레 등 13개 춤을 두 시간 동안 정신 없이 교차하며 무대를 유린했다.

보통 춤이 음악에 맞춰 혹은 어울리며 진행된다면, 이 무대에서 춤은 음악과 마치 싸우는 듯했다. 러시아·영국·독일·이탈리아 등에서 온 18명의 다국적 춤꾼들은 음악에 밀리지 않겠다는 각오라도 다진양, 힘찬 몸짓으로 내면의 응어리를 폭발시켰다. 보통 10살 무렵 춤을 추기 시작해 각종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했거나 ‘댄싱 위드 더 스타스’(미국 ABC), ‘소우 유 싱크 유 캔 댄스’(미국 FOX), ‘수퍼스타 오브 댄스’(미국 NBC) 같은 리얼리티 프로그램 출신이라는 명성을 강조라도 하듯 이들은 힘으로 무대를 장악했다. 절도 있게 춤을 추다가 춤추던 여성 파트너를 거꾸로 세우고 마치 시계처럼 “땡” 소리로 마무리한 코너는 인상적이었다.

그런 힘찬 몸짓을 보는 시선은 자연스럽게 이들의 몸으로 이어졌다. 요즘 ‘초콜릿 복근’이다. ‘꿀벅지’다 해서 육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지도 오래. 그 기저에는 “저런 몸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까”라는 경외감이 깔려 있는데, 이번에 ‘식스팩’과 탄탄한 허벅지가 빠르게 움직이는 것을 보며 “저런 몸짓을 위해서는 또 얼마나 노력했을까”라는 새로운 부러움이 밀려들었다.

특히 벗은 상체를 드러내고 돌아서서 승모근과 능형근, 소원근 같은 등짝 근육들을 제각각 꿈틀거리게 한 한 남자 댄서의 뒤태는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이와 함께 우아한 드레스와 정장 차림의 비엔나 왈츠, 흰색 와이셔츠 차림으로 맨발의 무대를 선보인 커플, 투우를 연상시키는 붉은 색 옷 커플과 보라색 커플의 대결 등에서는 춤의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처음엔 태평한 태도로 박수를 치던 객석은 점차 달아올라 수차례 이어진 커튼콜에서는 급기야 나이 지긋한 아저씨들까지 모두 기립하고 환호게 만들었다. 첫 등장부터 객석 사이로 출연해 마지막까지 관객과 함께하려는 모습을 보인 출연진들은 서비스 정신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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