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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공창논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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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현실과 이상의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나름대로 우리도 공창(公娼)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릴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김강자 서울경찰청 방범과장이 공창문제를 제기해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해 일선 경찰서장으로서 매춘의 대명사인 '미아리 텍사스' 현장에서 불법매춘을 근절하기 위해 '전쟁' 을 벌였던 金씨가 이제 현실적으로 그것을 막기 위해 매춘을 합법화하자는 것이다.

매춘 논란을 떠나 金씨의 말에서 오늘 진정 새기고 싶은 것은 '현실과 이상의 딜레마' 다. 이상(理想)은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초월적인 가치나 규범이다. 플라톤은 이데아(이념)에 기초해 철학적으로 '이상국가' 를 세웠다.

이데아는 세상 모든 것의 영원불변하는 진리로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이데아를 본뜬 것, 혹은 그 그림자에 불과하니 그 이데아에 맞게 이론으로 세운 유토피아가 이상국가이고 그런 나라의 실현은 늘 인류의 건전한 생각에 존재해왔다.

'유토피아' 라는 말은 16세기 초 영국의 토머스 모어의 공상소설 『유토피아』에 처음으로 나온다. 선원으로부터 들었다며 묘사해 내려간 그 나라에서는 누구든 똑같이 하루 여섯시간만 노동하면 된다.

필요한 물품은 시장의 창고에서 자유롭게 갖다 쓰면 된다. 그런 나라를 그리면서 모어는 그리스어의 '없는(ou-)' 과 '장소(topos)' 를 합쳐 '유토피아' 라는 말을 만들었다. 모어도 유토피아를 현실적으로는 어느 곳에도 존재할 수 없는 이상향(理想鄕)으로 본 것이다.

이 이상향을 현실세계에서 실현하려 한 나라가 구 소련이었다. 순수 관념차원의 이상.이데아를 사회에 그대로 적용하려는 이데올로기는 그러나 구 소련의 몰락으로 역시 유토피아였음을 다시 한번 깨치게 했다.

노동조합과 정부의 대립이 첨예화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지도부의 일괄검거에 나선 당국에 맞서 반정부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국민의 정부와 민주노총은 '이념적 동지' 였다. 그 이념과 현실 사이의 딜레마가 충돌을 부르고 있는 것이다. 어디 이뿐인가.

지금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이념이 현실화하면서 갈등을 빚고 있다. 인간 세상에 엄존할 수밖에 없는 불법 매춘을 당위를 내세워 잡겠다던 金씨의 이번 현실적 발언은 이념과 현실의 딜레마를 아프게 보여주고 있어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 크다.

이경철 문화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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