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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의 '제갈공명' 칼 로브 정치 고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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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3일 오후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승리선언 연설에서 "설계사(architect), 칼 로브"에게 감사를 표시했다. 백악관 정치담당 고문 칼 로브(사진). 공화당이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이후 가장 화려한 승리를 맛본 이번 선거를 배후에서 총괄 지휘한 인물이다.

대학 시절부터 공화당 조직에서 활동한 그는 1980년 아버지 조지 부시의 실패한 대선 도전을 도우면서 아들 부시(현 대통령)와 알게 됐다. 학력은 6개 대학을 전전하다 유타대를 중퇴한 게 전부지만 백악관의 실질 권력 서열은 딕 체니 부통령에 이어 셋째라고 한다.

CNN의 정치평론가 폴 베갈라는 "이번 대선은 칼 로브 전략의 승리"라고 요약했다.

미 대선엔 수십년의 전통이 있다.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중도 온건노선'을 표방해 왔다. 부동층 유권자의 공통분모를 공략하는 노선이다. 하지만 로브는 이번 대선에서 처음부터 골수 공화당의 가치를 내세우도록 했다. 각종 사회적 이슈에 대한 갈등과 분열을 만들어 자신의 핵심 지지기반을 결집시키는 전략이었다.

부시 대통령이 동성결혼을 대놓고 비난하고, 인간 배아 줄기세포(stem cell) 연구에 반대하며, 낙태문제에 강경한 입장을 끝까지 유지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2000년 대선 때는 보수적인 기독교인 400만명이 투표장에 나오지 않았다. 이들을 끌어내면 공화당은 반드시 승리한다"는 판단이 뒤에 있었다. 그는 또 선거를 닷새 앞두고 플로리다.오하이오 등 핵심 접전 주에 자원봉사자를 대거 투입, 잠재적 지지자들을 일대일로 면담해 투표장으로 끌어내는 대담한 작전을 폈다.

로브는 항상 허를 찌르는 전략으로 승리해 왔다. 전통을 무시하고 부시에게 직접 케리 후보를 공격하도록 이끈 것도 그다. 결국 케리는 부시가 붙여준'말 바꾸기 명수(flip-flop)'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했다. 이로써 로브는 지금까지 자신이 주도한 41건의 굵직한 선거에서 모두 37차례 승리하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

그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평가도 받는다. '부시의 브레인 칼 로브'라는 책의 저자 제임스 무어는 "로브는 소문을 정치적 무기로 만드는 법을 알고 있다"고 썼다. 1994년 조지 W 부시가 텍사스 주지사 선거에 나왔을 때다. 경쟁자인 현직 여성 주지사 앤 리처드는 동성연애자라는 소문과 싸우다 무너져 버렸다.

2000년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 때 부시의 라이벌인 존 매케인은 "숨겨놓은 흑인 아들이 있다" "베트콩에 잡혀서 조국을 배신했다"는 흑색선전을 해명하느라 고생했다. 이번 대선에서 케리는 "베트남전에서 비무장의 소년을 사살했다"는 등의 음해에 시달렸다.

선거 막바지에 오사마 빈 라덴의 육성 테이프가 공개된 것에도 로브의 보이지 않는 손이 개입했다고 믿는 사람이 많다.

로브는 "대통령과 상.하원, 대법원을 모두 공화당이 장악하고 보수적 가치가 미국을 지배할 것"이라고 말해왔다. 그는 꿈을 이루었다.

워싱턴=김종혁.강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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